한국일보

이상적인 선물

2000-10-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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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이 본 한국

▶ 크리스 포오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예배 후에 친교 실에서 영어부 멤버들과 환담을 하던 도중 대화가 줄리언의 백일선물로 바뀌었다. 줄리언은 토니와 수전의 첫아들이다. 백일 선물을 무엇으로 줄까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이 한마디씩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면서 들으니, 제안하는 선물의 종류가 네 가지로 구분되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선물, 사려 깊은 선물, 유머스러운 선물, 실용적인 선물로 제안자의 성격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먼저 말을 꺼낸 미세스 김이 "돈을 모아서 아기 금반지를 선물로 하자" 하고 제의하였다. 한국에서 백일 잔치에 반지를 주는 것이 전통이라고 하면서 우리들도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미세스 김의 아이디어에 한국사람 두서너 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티브가 고개를 저으면서 "금반지를 우리 아기도 백일에 받았는데 딱 한번 손가락에 껴보고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서 반지가 아기선물로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만약에 가까운 친척이 반지를 준다면 나중에 줄리언에게 센티멘털한 선물이 되겠지만 우리는 가까운 친척이 아니니까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여 전통적인 선물인 금반지는 미국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그러면 줄리언 엄마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알아서 선물로 하자" 고 말을 꺼냈다. 토니와 수전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많은 친척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었을 텐데 하면서 각자가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데, 생각이 깊은 미세스 리가 줄리언 엄마를 잘 알아요?" 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수전의 취향을 알면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아기 물건을 사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수전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제의하지 못 하였기에 사려 깊은 선물제안이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그룹의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하여 내가 말을 꺼냈다. "내 여자 조카가 마흔 살 생일선물로 받은 선물을 하면 어떨까?" 하고 아내를 쳐다보면서 그룹에게 말하자, 모두들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미친 미국사람들"이라면서 설명하였다. 내 조카 발레리가 받은 선물은 방귀뀌는 소리를 내는 전자 제품인데, 기계를 바지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점잖지 못한 소리를 내는 그런 기계라고 설명하자 모두들 웃으면서 줄리언을 방구쟁이로 만드는 것을 토니와 수전이 고마워하지 않을 것 같다하여 나의 아이디어는 비토 당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돈으로 주자" 하고 제안하였다. 돈을 선물로 주는 것은 아마 가장 실용적이겠지만 선물을 주는 사람의 성의가 담기지 않는 것 같다하여 그룹의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이때쯤에 부엌에서 일하던 제인이 돌아와서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리다가 "메이시 선물권을 사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선물권을 수전에게 주면 아기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살수 있어 실용적이고 사려 깊은 선물일 것 같다고 하여 미국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무슨 선물을 줄 것인가를 당신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선물은 그것을 주고받는 사람과의 관계를 말해주고, 주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 준다고 생각한다. 전통과 풍습을 중요시한다면 금반지를 주라. 선물을 받는 사람과 이름을 부르는 정도의 절친한 관계인가? 그러면 센티멘털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을 주라. 실용적인 사람이라면 돈을 선물로 주라. 실용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사람인가? 그러면 선물권을 주라. 만약에 경우를 생각해서 조언하건대, 선물 받는 사람이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방귀뀌는 기계 같은 선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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