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치 무관심 이유가 있다

2000-10-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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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치와 시민참여

▶ 아리아나 허핑턴 (정치평론가)

오늘의 미국정치는 어떤 각도에서 보는가에 따라 낙관적일 수도 있고 비관적일 수도 있다. 다우존스는 비록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지만 사상 최고에 달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유례가 없는 지속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극에 달하고 있다. 11월 선거 투표율은 50%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선거에서는 18~24세 유권자중 불과 20%만이 투표에 참가했다. 950만명의 어린이가 위험 속에 방치돼 있고 이곳 LA에서만 300만명의 어린이가 기아선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가 새로 쓴 책 ‘정부를 전복하는 방법’은 지금부터 1,000년후 단 1명의 유권자만이 존재하는 상황을 냉소적으로 그렸다. 그의 이름은 밥 곤잘레스고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살고 있다. 양대 정당은 그의 표를 얻기 위해 수조달러를 투입한다. 조지 부시 20세는 "조지 부시 20세에게 투표를. 그는 밥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마한다. 비록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국 의회는 재정적 이해관계로 인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 전당대회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우리가 4년에 한번 미국의 정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민주, 공화 양당은 전당대회장을 쇼무대로 만들고 있다. 전당대회는 정치와 토론, 논쟁과 대립의 장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마찰의 요소가 있는 것은 모두 감추고 단결을 보여주는 것만이 중요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반드시 일치된 의견을 보일 수는 없다.

◎ 돈과 정치

정치에 대한 썩은 돈의 영향력을 개선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아무 것도 개선할 수 없다. 의사일정이 누가 돈을 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최근 연방의회가 헬기를 동원해 콜롬비아에서 마약소탕하자는 내용의 법안에 10억30만달러를 배정한 것이 좋은 예다. 연방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 헬기제조회사에서 양당에 거액의 정치헌금을 했다. 콜롬비아도 버논 조단을 로비스트로 고용했다. 의회 세출위원회 회의에 이들 로비스트들은 참석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은 없었다. 치료할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300만명의 마약중독자의 의견을 대변할 사람도 없었다. 이는 양당이 우리가 직면한 주요 문제에 대해 침묵의 합의를 하고 있고 정치자금을 대주는 큰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이 법안의 통과로 큰 이익을 볼 것이 틀림없는 록히드 마틴사는 민주당계 여론조사 전문가를 고용해 "미국 국민의 56%가 콜롬비아에 2억달러를 지출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 백악관에 보냈다. 내 생각으로는 콜롬비아가 어느 구석에 붙어있는지 모를 국민이 56%는 될 것이 틀림없는데 말이다.


◎ 여론조사와 정치

이같은 위탁 여론조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순서를 어떤 식으로 나열하는가에 따라 결과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여론조사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나머지 여론조사 전문가가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링컨시대에 오늘날 같은 여론조사가 있었다면 링컨은 결코 노예 해방령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옆에서 "각하 이 법안에 서명하면 국민 지지도가 20%가 하락할 것입니다"라고 말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날 정치무대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슈는 다루어지지 않고 70% 이상 지지율을 얻을 이슈들만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풍요 속의 빈곤

사상 유례없는 풍요 속에서도 빈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지금 두 대통령후보가 하는 것처럼 "어떤 어린이도 뒤에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혹은 "모든 어린이가 아메리칸 드림을 함께 즐길 것이다"라며 은근슬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골드워터에서 닉슨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후보들이 후보수락 연설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모두가 립서비스로 끝내고 말았다. 미국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아직까지 해결 못했을 리 없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저마다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어 또다시 학교에서 인종분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학교 건설보다 교도소 건설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 마약문제

어린이들까지도 비폭력 마약사범으로 20~4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흑인이다. 마약과의 전쟁은 마이너리티와의 전쟁이 되고 있다. 주류사회와 마이너리티의 괴리는 새로운 민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미전국 비폭력 마약사범 수감자는 40만명이 넘는다. 그들은 감방에서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마약을 접하기 가장 쉬운 장소는 교도소다. 교도소에서조차 마약을 추방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콜롬비아에 헬기를 보내서 추방할 수 있겠는가. 마약전쟁은 새로운 월남전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도 이를 알고 있다. 다만 부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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