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하임 에인절스는 연장 14회 혈전 끝에 오클랜드 A’s를 6대3으로 제압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연장 10회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4대3으로 눌렀고 텍사스 레인저스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13대6으로 완파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23대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 차로 풍지박살냈다.
시즌 마감을 사흘 앞둔 지난 28일 아메리칸리그 스코어들이다. 위의 스코어들을 예로 들은 것은 흥미로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 바로 이긴 에인절스, 트윈스, 레인저스, 오리올스 등이 모두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완전 탈락한 팀들인 반면 패자들은 하나 같이 피말리는 플레이오프 레이스에 들어있는 갈길 바쁜 팀들이라는 사실이다. 매리너스와 A’s는 서부조에서 반게임차로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고 인디언스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A’s를 1.5게임차로 바짝 뒤쫓고 있으며 블루제이스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 이날 경기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결과는 전원 패배. 절대 지면 안되는 팀들이 이길 필요가 없는 팀들에게 진 것이다. 그것도 두 게임은 연장 14회와 10회까지 가는 숨막히는 접전 끝에 승부가 갈렸다.
이 경기들은 왜 미국에서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못 이기면 누가 이겨도 상관없다는 식의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에인절스가 꼭 이기지 않아도 되는 경기에서 연장 14회 혈전 끝에 갈길 바쁜 A’s의 발목을 잡은 것은 A’s에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게임에 나서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스포츠 기본정신에 충실한 것이다. 진 팀도 이를 잘 알기에 섭섭한 생각을 갖는 법이 없다. 진정한 챔피언이 되려면 공정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두말하면 잔소리요,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슬픈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스포츠 정신이 종종 필요에 따라 타협대상이 돼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보다 손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해 일부로 져주기 경기를 하는 사건이 있어 말썽이 됐었다. 국제대회에서도 ‘궁극적 승리를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일부러 경기는 지거나 비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위해 과정에 최선에 다하지 않는 승부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승리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에 있다. 자기팀에는 큰 의미 없는 경기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메이저리그팀들의 모습을 보며 스포츠의 참뜻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