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퍼스트 레이디에게.
가없는 봉사로 한 남자(나)를 29년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든데 대해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신을 표창하는 것은 나의 영광이자 특권입니다. 1951년부터 낸시 데이비스는 스스로 얼마나 외로운지도 모르는 한 외로운 남자의 처지를 보고 그를 공허한 삶에서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인내와 부드러움으로 그녀는 그의 음울하고 둔탁한 마음에 이해의 빛을 가져왔고, 그는 온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집무실에 앉아있으면 그녀의 창문이 보이고, 그리고 거기 그녀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 남자는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로널드 레이건-미국대통령.
P.S. 그 남자- 다시말해 나는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낸시여사가 레이건이 보낸 편지들을 묶어낸 책 ‘사랑해요, 로니’(I Love You, Ronnie)에 나오는 편지중의 일부다. 81년 레이건이 백악관에서 맞은 첫 결혼기념일에 부인에게 보낸 조크섞인 편지였다.
레이건이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건강하게 노후를 보낸다면 이런 책은 낸시의 허영심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에 걸려 비참하게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레이건, 그리고 전쟁에 나가듯 하루하루를 버티는 낸시의 일평생 사랑 이야기는 부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바가 있다.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책을 보면 레이건은 믿을수 없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애정이 넘치는 편지를 수십년간 낸시에게 썼다. 대통령집무실에서도, 공군기 1호 안에서도, 한 지붕밑에 있으면서도 썼다. 그런 지칠줄 모르는 애정표현이 그들을 한평생 애인 같은 싱싱함으로 살게 했고, 그것이 오늘 절망을 견딜수 있는 힘이 된다고 낸시는 고백한 적이 있다.
레이건의 편지를 통한 애정표현이 감탄스러워서 주위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남자들의 반응은 “매일 얼굴 맞대고 살면서 너무 쑥스럽다”는 것이었고, 여자들은 “그런 대접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반응이었다.
“여자들은 누구나 남편에게서 달콤한 사랑의 표현을 바라지요. 한국남자들이 워낙 무덤덤하다보니 포기하고 사는 거예요”라고 여성들은 말했다. LA 근교 백인동네에 사는 한 주부는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가면 “한번씩 남편이 서운해진다”고 했다.
“미국 남편들은 회의 중에도 아내를 쓰다듬고 껴안으며 정말 다정하게 행동해요. 뒤에 앉아서 보다보면 부러워져요”
평소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아이들 픽업 올때는 거세고 매력없게 보이던 미국여성들이 남편으로부터 애무받고 키스받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인다”고 그 주부는 말했다. 아내들의 서운한 마음에 대해 한 남성은 한국남자의 입장을 이렇게 대변했다.
“마음속의 사랑과 표현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성격에 따라 세세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데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되지요”
이민1세들에게는 ‘남자는 과묵해야 된다’는 한국적 관념이 아무래도 영향을 미친다. 백인남성과 결혼한 한 여성은 결혼초 남편의 입만 열면 나오는 “I love you”가 싫었다고 했다.
“정말 사랑한다면 말 안해도 드러날 텐데 너무 자주 (사랑을) 말하니까 기계적인것 같더군요. 그런데 오래 살다보니 그런 잦은 애정표현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느껴져요”
몇년전 한국에는‘애인같은 아내’를 내세운 화장품광고가 있었다. 아내가 애인같은 남성은 얼마나 사는 것이 신나겠는가. 문제는 누가 ‘아내’를 ‘애인’으로 만드느냐는 것이다. 대부분 한국가정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는 즉시 부모역할에 너무 비중이 가서 부부문화가 없다. 자녀양육에 매달리다 보면 아내들은 자신이 ‘엄마’이기 이전에 남편의 ‘여자’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이다.
모든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한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마음 깊은 곳에 아무리 사랑이 커도 표현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