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

2000-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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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 of America

▶ (잰 러셀·보스턴 글로브)

로라 부시와 팁 고어는 스미소니안 박물관의 퍼스트 레이디 홀을 방문하고 싶을 것이다. 관광객들로 꽉찬 게 퍼스트 레이디 홀이지만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들은 그들이 애호하던 도자기라든지 의상으로 어필되고 있다. 박물관에 진열된 것들이 바로 그런 기념물들이지 퍼스트 레이디들의 이력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대에서 제5대에 이르는 퍼스트 레이디들이 입었던 가운은 머리가 없는 마네킹에 입혀져 전시돼 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퍼스트 레이디로서 역할에서 필요한 것은 머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은 당초부터 대통령의 부인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해야 할지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메어리 링컨, 엘레노어 루즈벨트, 힐러리 클린턴 등과 같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의견을 내놓는 퍼스트 레이디들은 국정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퍼스트 레이디들, 예컨대 매이미 아이젠하워나, 패트 닉슨 등은 ‘백악관을 장식한 가구’라는 빈정거림의 대상이 됐다.


초대 퍼스트 레이디 마사 워싱턴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치 국사범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죄수와 비교한 것이다.

다음 퍼스트 레이디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에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새로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퍼스트 레이디는 선거를 통해 당선되지 않는다. 고용된 공직자도 아니다. 당연히 페이도 없다. 그런데도 퍼스트 레이디에게 요구되는 것은 절대적 충성이다. 또 전통에 충실한 처신을 요구한다. 퍼스트 레이디에게도 미국의 보통 여성과 같은 선택권을 줘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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