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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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한국전통 배척 안타까운 일"

2000-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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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석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

▶ 민경훈 편집위원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최근 한국에서 나온 불교서적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하버드와 예일 출신의 미국인 엘리트가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을 적은 이 책은 현대를 살아 가는 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불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큰 감명을 줬다. 1일 LA 한인타운에서 설법을 하기 위해 온 저자 현각스님(35)을 만나 근황과 미국 승려가 본 한국인상에 관해 들어봤다.


-이제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한지도 꽤 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한국에 갔으며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90년 처음 한국땅을 밟았고 92년 정식으로 불도에 입문했습니다. 요새는 주로 계룡산 국제선원에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LA에 오게 된 것은 강연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며 끝나면 바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국제선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세계 각국의 외국 승려들이 불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현재 흑인 1명을 포함 20명의 미국 스님과 이스라엘, 동유럽등 여러 나라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쓴 자서전은 한국뿐 아니라 LA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KBS가 제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내보내자 14개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나이도 어린데 무슨 자서전이냐’고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당시 스승인 숭산스님의 책을 한국말로 번역중이었는데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곳에서도 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군데서 자서전을 쓰면 내주겠다는 오퍼가 들어와 할수 없이 응했습니다.


-그 책은 100만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판매부수는 얼마나 됩니까.

▲저는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수익금은 모두 국제선원에 헌금했습니다. (구멍난 가사를 들어 보이며) 보다시피 옷부터 기워입어야할 형편입니다. (웃음)


-어째서 모두 헌금했습니까.


▲한국 불교는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저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거져 줬습니다. 거져 받은 것을 거져 돌려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불교에 입문하게 됐습니까.

▲저희 집안은 가톨릭으로 저도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예일에서도 쇼펜하워를 비롯한 독일철학을 주로 공부했구요. 그런데 자라면서 기독교는 내가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침실이 12개에 식당이 3개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주위에는 엄마가 AIDS에 걸려 태어나면서부터 AIDS 환자인 아기들도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어째서 이런 불공평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신부님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믿고 따르라”는 답변외에는 줄수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철학수업을 하기 위해 프라이부르크대로 갔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학생지도자였던 독일 청년이 집에 불상 사진을 걸어 놓고 향을 피우며 3배하는 광경을 본 것입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석굴암 사진이었습니다) 그 학생 아버지는 독일 교회 지도자로 독일 대통령과 친구라고 합니다.
그후 미국에 돌아 와 하버드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는데 하루는 지도교수가 “생불이 왔으니 한번 만나 보라”고 말했습니다. 지도교수는 일본 불교의 권위자로 달라이 라마와 친구 사이일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 때 온 사람이 숭산스님이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어눌한 김치영어로 강연한 후 청중들의 질문에 도통한 칼잡이처럼 답변하는데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하버드, MIT교수들도 입을 딱 벌렸습니다. 처음 숭산스님을 만난 순간 ‘이 분이 내가 찾던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제자가 됐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본 한국인의 이미지는 어떤 것입니까.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스한 인정은 개인주의 발달로 상대방을 모두 경쟁상대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오랫 동안 한국에 머물다 미국에 와 가게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잔 돈을 거슬러 줄 때 상대가 연장자일 때는 두 손으로 주거나 한 손이라도 공손하게 줍니다. 미국 가게 점원이 던지듯이 준 동전을 받으면서 칼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 조상,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미국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단점도 많이 봤으리라 생각됩니다.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전 단군상의 목이 잘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상에 십자가를 그려 넣는가 하면 절에 불을 지르고 성황당을 훼손하는등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무시하거나 해꼬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백운대지만 수유리에서 볼 때와 구파발에서 볼 때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진리를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사상을 배우려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오히려 한국의 훌륭한 전통을 배척하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미국 엘리트들 가운데 불교에 심취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봅니까.

▲미국인들은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무조건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믿음보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에 더 이끌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제 엘리트들뿐이 아닙니다. 마이클 조던, 리키 마틴, 키아누 리브스등이 모두 독실한 신자입니다. 부와 인기와 쾌락을 마음껏 누린 사람들이지만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물질적 성공만으로는 마음의 공허함을 메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6년전 600만명이던 미국 불교도 수는 이제 1,000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교중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이같은 현상은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승려생활을 하면서 후회되는 점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어째서 이처럼 뒤늦게 불교를 알게 됐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의 방황은 참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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