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화 이룩한 태권도

2000-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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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권도는 한국의 국기만은 아닙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미국 태권도대표팀 전영인 헤드코치(46)의 말이다. 전코치는 LA동부 다이아몬드바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가주 한인이다. 그래서 우리 미주 한인들 입장에서는 그가 지도한 미국선수 스티브 로페스가 28일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68킬로그램급 결승에서 한국의 유망주 신준식을 꺾은 일은 한편 아쉽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사다.

"내가 가르친 제자가 한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가뜩이나 메달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팀의 덜미를 잡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우리 국기인 태권도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화를 이룩하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현지시간으로 시합 다음날인 29일 새벽 선수촌으로 전화를 걸어 단잠을 자던 전코치로부터 금메달 획득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전코치가 미 태권도대표팀 코치를 맡은 것은 지난 90년부터. 올림픽 때는 어느 정도 뒷받침이 있지만 그외 국제대회 때는 재정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미국 태권도 실력 향상을 위해 10년 동안 고군분투해 왔다.

태권도는 원래 남녀 각 8체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각 4체급으로 줄이고 한국가에서 각 2체급씩 4명의 선수만 출전시킬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는 종주국인 한국의 독식을 우려,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탈락시키려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고육지책이다.

미국팀의 경우 4명의 남녀 출전자중 한인 에스더 김양의 출전권 양보 미담으로 유명해진 케이 포양이 금메달 0순위였으나 1회전에서 탈락했다. 팀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으나 로페스의 예기치 않던 선전으로 180도 바뀌었다.
사실, 전코치의 치밀한 작전이 없었더라면 로페스의 금메달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코치도 "로페스가 한수 위인 한국의 신준식을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신준식은 기량이 좋고 빠른 앞돌려차기가 장기다. 섣불리 공격에 나섰다가는 당하기 쉽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진하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3분 3회전의 2회전까지는 수비위주로 실점을 억제하고 3회전에 들어서 공격을 한다는 작전을 세웠는데 다행히 주효했다. 신준식은 3회전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키가 5인치나 더 큰 로페스에게 밀리기 시작, 결국 로페스가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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