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녁식사와 RSVP

2000-09-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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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양서 (시미벨리)

서울에 다녀온 아내의 보고에 따르면 7학년 되는 손녀가 강원도에 있는 민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오겠다고 한단다. 한국을 익힌 아이들이 외국 유학을 해야 조국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세워진 학교라고 한다. 아마도 그 설립 취지가 20년 전에 서울 근교에 세워진 한국 정신문화연구소의 그것과 흡사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연구소 설립이 거론될 때부터 내게는 ‘정신문화’라는 이름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첫째 모든 문화는 정신적 산물이기 때문에 정신문화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둘째 한국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한 기관이면 한국(학)연구소 또는 동서문화 비교연구소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연구기관의 영어 이름은 결국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로 낙착되어 이 기관에 초청되는 외국인 학자들과 서양학을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민족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배달민족의 풍습이나 철학을 우월하다고 가르치고 남의 문화를 경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문화간의 우열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풍속보다 서양쪽이 협동하는데 편리한 점이 많은 경우도 있다. 민족학교이든 서양학교이든 모든 분야에서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여 우열을 토론하는 교육방법을 택해야 될 것이다.

지난 6월30일자 한국일보 사설에 "음식이 나오는 행사를 치르려면 주최측에서 RSVP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올지 못 올지 알려달라는 단서가 붙는 초청장을 받아 본 사람이 보내오는 답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도록 해야 된다는 뜻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한국일보 사설은 초청자가 외국인인 경우를 두고 쓴 글이다. 20여년 전 서울에 주재한 프랑스 대사에 따르면 자기 관저에 와달라고 초청 받은 서울의 명사들이 RSVP가 붙은 초청장을 받고도 회답을 하지 않아 골탕을 먹은 이야기를 Korea Times에 세밀히 하소연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서울 한복판의 저명 인사들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 제직회에서 “저녁식사가 나오는 모임에는 참석할 사람의 신청을 받도록 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어림수라도 알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유명한 대학의 교수인 원로 장로에게 호되게 훈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지금껏 탈없이 잘 해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코리아타운에 있는 꽤 소문난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려고 메뉴를 요구했더니 모든 종류의 음식값이 꼭 같아서 메뉴가 없다고 했다. 함께 간 친구의 어린 손녀가 음식을 추천해서 셋이 함께 먹었는데 그 어린이와 나는 음식을 다 먹지 못하여 나는 남은 것을 싸 가지고 집에 왔다. 먹을 만큼만 주문할 수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맥도널드 식당이 그리웠다. 한국 음식과 식당을 국제화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민족학교의 교과과정에 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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