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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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의문사는 채팅중독이 부른 비극

2000-09-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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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동거관계인 한인 학생 커플이 두 달된 아들을 숨지게 방치해 둔 혐의로 일시 체포된 사건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숨진 영아의 사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아 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늘날 한인 사회가 맞고 있는 여러 가지 청소년 문제를 집약해 표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경종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사건의 윤곽은 대강 이런 식으로 잡혀진다. "막 10대를 벗어난 두 명의 한인 남녀 학생이 PC 채팅을 통해 서로 알게 된다. 여자는 한국서 온 유학생, 남자는 영주권자인 이들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지고 결국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여자는 임신을 한다. 이들은 부모가 알까 두려워 숨겨온 상태에서 육아지식도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결국 비극을 맞는다"

이 비극적 스토리는 여러 가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우선 주목할 점은 사건 당사자들이 채팅을 통해 만났다는 것으로 무분별한 채팅이 청소년 탈선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한인 청소들의 채팅 중독은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채팅이 단순한 채팅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학습 시간을 빼앗고 결국은 탈선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데에 있다. 이번의 경우도 채팅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불장난’에 빠져들었고 한 어린 생명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채팅 중독증의 해악성을 새삼 깨우쳐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영아 의문사 사건은 다른 한편 한인 사회의 미혼모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일부 상담기관의 경우 입양 절차를 묻는 미혼모 상담은 해마다 늘어 최근에는 월평균 1회 이상 이같은 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혼모 문제에 극히 보수적이고 또 숨기는 경향인 한인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그나마 빙산의 일각이고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성인 문화가 병들었을 때 청소년 문화도 퇴폐에 빠져든다. 반대로 성인 사회가 건전성을 유지할 때 청소년 사회도 건강해 진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청소년 문제는 바로 사회문제다. 청소년 탈선을 부채질하는 일부 악덕 PC방들의 편법 영업, 미성년자를 유혹하는 향락업소의 범람등 한인 사회 주변은 온통 퇴폐의 물결로 휩싸여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변을 다시 돌아보고 청소년 문제에 보다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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