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미국의 코어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경제 외적 요인에 의하여 심하게 변화하는 식품류와 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뜻함)은 세 가지 이유로 약간 상승의 기미가 있었다. 우선, 유류 가격 상승이 경제 각 부문에 미친 파장 효과. 예를 들면 지난 1년동안 유류 가격 인상 때문에 항공 요금은 11%가 올랐다. 둘째, 의약요금의 급속한 상승은 의료보험료를 올리게 되고 이에 따른 각종 제조원가 인상을 동반했다. 의료부문 소비자 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4.1%나 뛰었다. 셋째, 의류를 비롯한 각종 소비재 가격은 하락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둔화가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소비재 가격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한 추세가 된다. 또한 앞으로도 수년동안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경제전반에 퍼지고 있는 높은 생산성은 물가를 잠재우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일본
이자율 인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중앙은행 총재는 일본경제가‘분명히 회복 중에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하야미 일본 중앙은행 총재의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대한 재정적자 정책과 저금리 금융정책에 힘입어 일본경제가 제대로 성장궤도를 밟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온 정부의 자신감 표현은 지난 10년 동안에 수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불발탄이 되고 만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경제 대국인 일본은 경제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 있다. 첫째, 일본경제는 10년째 사실상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경제가 이처럼 장기침체에 빠진 적은 경제사상 없던 일이다. 둘째,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이후 주요 국가의 경제가 소위‘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진 채 금리정책의 특단 수단인 무이자 대부 정책마저도 경제 활력소가 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에 빠진 사례가 없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 수년동안 경기진작 정책으로 불필요한 도로건설 등 불요불급한 공공사업을 마구 벌림으로서 국민 소득수준에 비교해볼 때 미국의 최악 재정적자 시절보다 두배나 악화된 재정적자 부담을 걸머지고도 경기부활에 불을 지피는 일에서 실패했다. 정부의 경기회복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침체에 빠진 소비와 투자가 정부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에 반응을 보이면서 점차 힘을 배양하기 시작하며 지속 성장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차게 식은 일본경제는 온갖 자극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경제 원론에서는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다음에는 전통적인 경제정책을 더 이상 적용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등 초 비상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번에 일본 중앙은행이 단행한 금리인상정책은 경제 상식과는 상반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하야미 총재는 금번 금리인상 논리로 중앙은행 독립, 저축예금 이자 지급, 구조조정 등을 들고 있지만 다소 의외이고 미약한 논거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재정적자를 무모할 정도로 단행해온 정부 적자정책에 반발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일 때라고 단호히 판단하였다는 후문이지만 정책상 타당성은 결여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