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길가에 쓰러진 여군

2000-09-1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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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기행(7)

일찍 잔 탓인지, 아니면 너무 마음이 설렌 탓인지 다음날인 6월21일 새벽 5시도 안돼서 일어났다. 가져온 책을 잠시 읽고 창 밖을 무료하게 내다보다가 호텔 앞‘창광거리’를 통과하는 차량을 세어보았다. 정확하게 10분간 자동차 2대와 자전거 6대가 통과했다. 걷는 사람들도 뜨문뜨문 보였다. 아침 5시30분, 북한 수도의 한복판 도로가 이처럼 한산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평양의 실상이었다.

아침식사는 숙박비에 포함된 것으로 달걀, 샐러드, 졸인 멸치와 죽이 전부였다. 이선생이 따로 돈을 주고 주스를 사와 나누어 마셨다. 식사후 일행인 김선생 부부가 만경대에 간다고 했다. 나는 만경대를 두 번이나 봤기 때문에 시큰둥했다. 이선생도 세 번 갔다왔다며 안내자에게 부탁해서 여정에서 빠졌는데 나는 김선생 부부가 같이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할 수없이 또 가게 됐다.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북한관광의 필수 코스이다. 생가 자체는 보잘것없는 초가집이지만 북한 당국은 이 곳을 성역화해서 북한 주민뿐 아니라 모든 외국인 방문객들로 하여금 꼭 찾아보도록 하고 있다. 김일성의 생가를 그들은“고향의 집”이라고 부른다.


평양시내에서 빠져 나와 남포(옛 진남포) 가는 길로 30분정도 달리면 만경대라는 사인판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계속 3∼4분가면“고향의 집”이 보인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따라 김일성 생가가 수리 중이어서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다.“고향의 집”에서 만경대 쪽으로 가는 길가에 여군 한 명이 거의 기진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일어날 힘이 없어 보였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만경대란 일만경이 보인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일성 주석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씨름 등을 하며 놀던 곳으로 성지화 돼 있다. 기념사진을 찍다가 동평양 발전소의 굴뚝에서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가 카메라에 잡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화력발전소는 석탄이 없어 미국이 제공하는 중유에 폐타이어를 갈아 섞어서 연료로 쓴다고 했다. 그러니 평양의 대기오염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돌아올 때는 통일로와 광복로를 거쳐왔다. 이 길들 양쪽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고 길도 매우 넓었는데 보행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원에게 사진 좀 찍게 해달라니까 이곳에서는 차를 세우지 못한다며 달리는 차안에서 찍으라고 했다. 할 수없이 그렇게 찍었으나 기분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됐다.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싶었으나 휴일이기 때문에 그 근처의 한 전통음식점에 들어갔다. 비빔밥은 10원(미화5달러), 쟁반냉면은 12원이었다. 내가 주문한 비빔밥엔 고기는 별로 없었으나 밥은 흰밥이었고 나물이 많았다. 안내원은 이 음식점의 비빕밥에 우리의 전통식품인 산나물이 많이 들었다고 자랑했다.

점심 후 호텔로 돌아와 오후 일정에 들어갔다.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등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이선생과 나는 그곳을 이미 두 번씩 가봤기 때문에 차라리 호텔에 남아 있겠다고 말하고 좀 고자세를 보였다. 안내자는 할 수 없다는 듯 우리에게 호텔에 남아 있으라고 당부하고 김선생 부부와 함께 버스로 떠났다.

나는 이선생에게 밖에 나가서 좀 걷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안내자가 호텔 안에 있으라고 했다며 나가기를 꺼렸다. 나는 혼자서 호텔 주위를 한시간 정도 걸어다니면서 평양 시민들의 삶의 현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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