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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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미래… 죽음 택하는 인디언 청소년들

2015-04-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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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년 가난 대물림… 주민들 폭력·마약에 찌든 일상

▶ 싸울 목표도 도망칠 곳도 없는 영원한 ‘수감자 인생’... “차라리 다른 곳서 다시 태어날래” 10대들 자살 줄이어

꽉 막힌 미래… 죽음 택하는 인디언 청소년들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보호구역인 파인리지로 말을 탄 주민 2명이 들어서고 있다. 파인리지의 청소년들은 광활한 인디언 보호구역에 갇혀 희망없는 삶을 이어가는 ‘종신수’들이다.

■ ‘파인리지 보호구역’서 벌어지는 비극


인디언 보호구역은 연방 정부의 보호막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미 대륙 토착 원주민들의 ‘유배지’다. 말이 좋아 보호구역이지 실상은 소수인종 ‘유치지역’에 가깝다.

다른 모든 인디언 보호구역이 그렇듯, 미 전역에서 여덟 번째로 규모가 큰 ‘파인리지 인디언 레저베이션’은 미래가 없는 곳이다. 수백년간 대물림 해온 가난에 기진한 거주민들은 폭력과 마약에 찌든 일상을 허위허위 이어간다.


사우스다코타와 네브래스카 접경지의 광활한 황무지에 펼쳐진 이곳에는 최소 1만6,000명, 최고 4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오그라라 수우’족의 후예들이 거주하고 있다. 거의 쓸모없는 불모지이긴 하지만 전체 면적이 200만에이커가 넘다 보니 인구밀도는 10에이커 당 0.8~2명으로 지극히 낮다.

보호구역은 1890년 발생한 ‘운디드 니’(Wounded Knee) 학살의 현장을 끼고 있다. 미 제7기병대가 300여명을 웃도는 인디언 부족민들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다. 일방적 학살극으로 끝난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수우족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보호구역으로 쫓겨들어갔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보호구역의 개발시계는 멈춰 섰다.

넓디넓은 황무지의 중심부에는 주유소 한곳과 대형 식품점 하나, 타코 존스, 피자 헛, 서브웨이와 골동품 가게가 덩그마니 놓여 있다.

당연히 구직전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연령층의 주민들이 극도로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미국 전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은 카운티가 보호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콜 및 마약 중독률 전국 수위를 달리는 몇몇 카운티 역시 파인리지 인디언 레저베이션의 행정구역에 편입되어 있다. 이곳의 폭력범죄 발생률과 실업률은 전국 최고수준이다. 자살률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2004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기간 파인리지에서는 거의 1,000건의 자살미수 사건이 보고됐다. 파인리지의 자살방지 아웃리치 서비스담당자인 이본 타이니 디코리는 거의 매주 자살사건이 발생한다고 개탄했다.

자살 이유는 흔히 그렇듯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확실한 미래가 절망스럽기에 주민들은 죽음을 택한다. 희망이 없으니 암울한 현실을 악착같이 참고 견뎌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파인리지 인디언 보호구역에선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특히 높다.


막막하고 살벌한 현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아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종종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다.

파인리지의 거주민들은 대체로 자살에 둔감하다. 워낙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다 보니 으레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7명의 청소년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자 파인리지의 부모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청소년 연쇄 자살사건은 지난해 12월12일, 14세 소년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어 숨지면서 불이 붙었다. 성탄절에는 15세 소녀가 숨진채 발견됐고 그로부터 몇 주 안 돼 이번에는 고교 치어리더로 활동하던 여학생이 스스로 삶을 접었다. 2월과 3월에도 각각 두 명씩 네명의 어린 목숨이 스러졌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고작 열 두 살이었다. 같은 기간 청소년 자살미수도 여러 건 터져 나왔다.

미성년자 자살이 꼬리를 물자 보호구역 내 중학교와 고등학교 재학생들은 페이스북에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 노골적인 호기심을 드러냈다. 페이스북에는 “차라리 이번 삶을 끝내버리고 다른 곳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메시지가 여러 건 올라왔다.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었다.

청소년들의 연쇄자살 사태에 화들짝 놀란 학부모들은 황급히 커뮤니티 홀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연방 공중보건국은 충격에 휩싸인 학생들을 위해 정신건강 상담의들을 급파했다.

오그라라 수우족 부회장인 토머스 푸어 베어는 “자살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며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만연한 학교 폭력과 괴롭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버리는 높은 실업률, 가정교육 부재 등이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푸어 베어의 질녀도 20세를 맞은 지난 겨울 자살했다.

파인리지 보호구역에서 30년간 자살방지 아웃리치 서비스를 담당해 온 이본 타아니 디코리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아이들이 목숨을 끊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분위기는 황량함 그 자체다. 붉은 땅에 듬성듬성 끼어든 초라한 목초지에 갈비대가 앙상히 드러난 말 몇 필이 어슬렁거리는 것이거의 정형화된 동네 풍경이다.

번듯한 가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주민들은 밀집대형을 이룬 모빌 홈에서 생활한다. 트레일러의 차체가 하도 낡아 내부 배선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밤이면 모빌 홈 주변을 7~8대의 고물 승용차들이 에워싼다.

각 가족의 구성원이 20명에서 25명이나 되기 때문에 트레일러 한 대로는 이들 모두의 잠자리를 해결할 수 없다. 부득이 노후차량을 침실로 활용해야 한다.

연방 정부 당국의 전문가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자라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외상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전투에 참여한 해외 참전군인들이 주로 앓는 증상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전쟁터는 가정이다. 어느 가정이건 거의 예외 없이 술과 마약과 폭력에 찌들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들과 맞싸울수 없고, 항복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다.

이 지역의 중·고등부 학생들은 1주일 중 5일을 학교 기숙사에서 보낸다. 보호구역이 워낙 넓고 학교가 몇 군데 안 되기 때문에 스쿨버스로 통학을 하려면 평균 3시간 정도를 잡아야 한다.

물론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보고 배운게 그것뿐인지, 습관처럼 욕설을 내뱉고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집보다는 한결 견디기 수월한 것인지 자살사건은 대부분 학생들이 귀가하는 주말에 터진다. 지난해 12월 이후 발생한 7건의 연쇄자살의 무대 역시 집이었다.

지난 1월31일 14세의 나이에 자살을 선택한 파인리지 하이스쿨 치어리더 알라니 마틴은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학교농구팀의 원정경기에 늘 따라다니는 그녀에겐 친구도 많았다.

그녀의 자살소식을 접한 교사들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레이샤 레프트핸드(17)에겐 전후사정이 명확하게 보였다. 자살미수 경험이 있는 레프트핸드는 “당시 가족문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학교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지금 여기서 스스로 멈춰서는 것이 고통의 연장을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머리를 때렸다. 레프트핸드는 어머니가 카운슬링을 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파인리지 하이스쿨의 교사들은 최근 다수의 여고생들이 합의한 동반자살 시도를 실행 직전단계에서 가까스로 무산시켰다. 하지만 자살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불모지가 기회의 땅으로 변하지 않는 한 보호구역 내 청소년들의 자살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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