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섰으며,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서른에 서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은 인격과 학문,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확고하게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서른을 한 사람이 인생의 사명과 중심을 바로 세우는 시기로 이해했습니다.
성경에서도 “30”이라는 숫자는 특별히 사명의 시작과 성숙한 헌신의 출발을 상징하는 숫자로 자주 등장합니다.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 41:46).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던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해서 청지기까지 되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훈련의 시간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5:4). 다윗은 어린 시절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곧바로 왕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10여년 동안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서른은 인간적 야망의 완성이 아니라, 연단을 통과한 믿음이 민족을 섬기는 지도력으로 나타난 시점이었습니다.
에스겔은 30세에 하나님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겔 1:1). 에스겔은 원래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이 될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전 597년 예루살렘을 침공한 바빌론에 의해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에스겔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중 30살이 되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면 제사장으로 서품을 받을 나이였습니다. 그런 에스겔을 하나님은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에스겔이 예언자로 부름받은 5년 후인 주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 절망 가운데 있던 바빌론 포로민들을 위로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도 30세였습니다(눅 3:23). 그 전까지 예수님은 조용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십자가의 길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서른은 구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헨리아펜젤러대학교가 개교30주년을 맞이하여 총장으로서 5월 21일 한국에서 개교30주년 기념 사은의 밤을 개최하였으며, LA에서는 개교30주년 감사예배 및 졸업식을 갖습니다. 오는 10월 22일에는 한국에서 개교30주년 기념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0이라는 숫자가 갖는 성경적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헨리아펜젤러대학교의 개교 30주년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맡기시는 영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은 단순한 학교 운영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씨앗처럼 시작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학교를 지켜 주셨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사명을 잃지 않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헨리아펜젤러대학교는 온라인 교육을 통해 전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있으며, 복음의 지경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육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30년의 시간을 지나 학교에 새로운 사명을 맡기고 계신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3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훈련과 준비를 지나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시기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몇 살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 위에 삶을 세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한 삼십이립(三十而立)이나 성경에서 30세의 나이가 주는 교훈은 “인생은 세월이 아니라 방향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사명을 바로 세운 사람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