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 지났을까’ 드디어 차고 문 여는 소리가 봄의 소리처럼 들린다. 재스민의 미소가 환한 오월, 허공을 스치는 부드러운 ‘스르륵’ 소리에, 그 아픔이 가시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소리에 실려오는 얼굴들의 모습에서 사람의 따스한 본성을 본다.
얼마 전의 그 절박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는 차.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상황을 깨닫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안돼! 간절한 바램에 온 힘을 다해 밟았지만 차는 결국 아파트 게이트를 부수고 나가 앞 집의 차고를 들이받고서야 비로소 멈췄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사고, 뜻하지 않은 사태다. 그때, 나는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자신이 잘못하고는 도망치고 싶은 심정, 나의 부끄러운 심성이다. 하지만 너덜너덜 조각난 앞유리, 찌그러진 보넷 깨어진 양쪽 미러,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 움직임 속에서도 ‘보험사나 디엠브이(Department of Motor Vehicle) 뒷감당에 대한 막막함뿐이었다. 이웃들이 자꾸만 웅성웅성 모인다. 그 이후 내 혼은 멀리 사라졌나보다.
딸이 오려면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누가 다가와서 묻는다. 보험 증서 있느냐고. 나는 글로브박스를 열지도 못했다. 그때였다. “도와드릴까요?” 이웃이 다가왔다. 천사의 목소리일까. 글로브박스를 함께 열어주고, 스마트폰으로 보험회사에 리포트를 해주었다. 내가 저지른 일을 내가 처리할 수 없음의 무능함, 햇빛 반사로 보이지 않는 전화기 문자판, 보이지 않는 작은 글자에 나는 유난히 서글퍼졌다.
곤경을 당한 이를 보면 타고난 본성이 드러날까.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모양이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설은 이웃이 물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이는 청심환을 건넸다. “나도 며칠 전에 사고 났어요. 보험 있으면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평소에는 모르던 사람들 사이에 인정의 꽃이 피어난다. 미역국을 끓여다 준 이웃, 감자탕을 건넨 옆집 부인. 게이트를 부셨어도 힐난하지 않은 관리자, 보험회사와 삼자 통화로 영어를 대신 해준 봉사자, 이런 베풀음 가운데서 사람의 정을 본다. 그런 따뜻한 행위와 말 속에서 선한 인간성을 본다. 그 순간의 충격과 떨림에서 나와 다른 이를 보며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눈 앞에서 경험한다. 사람은 외부 환경에 따라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 혹은 제 입장에 따라 선악의 양면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천사들은 곤경에서 얼어붙은 듯한 내 몸과 마음을 녹이는 천상의 마음이다. 어쩌면, 사고를 낸 사람을 힐난하기 쉬울 텐데, 아무도 그러지는 않아, 고맙다. 내 안의 이기심이 드러나지 않아 안도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경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역시 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본다. 인간의 본성은 항상 굳어 있는 석고는 아니다. 나를 갑작스러운 흑암 속에 밀어 넣은 그날의 사고. 그 속에서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것은 온정이다. 사고가 없었으면 영 모를지도 모르는 사람의 따스함을 보았다.
어떤 혹한에도 온기는 얼음을 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