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개방 등 15개항 vs 호르무즈 관리통제 등 10개항
▶ 밴스 “장난 말라”…갈리바프, 레바논 휴전·제재해제 선결조건 제시
2주간 휴전 중인 미국과 이란이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열릴 종전 협상 시작 전부터 치열한 장외 기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어떤 의제가 오를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이란은 그간 중재국들을 통한 간접적인 의사 교환을 통해 각자 요구를 전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이번 대면 협상에서 쟁점이 될 협상 의제들의 윤곽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이란에 15개항의 종전안을 제시했다.
스티브 윗코프 미 중동특사는 지난달 27일(미국시간) 백악관에 내각회의에서 이란 측에 15개항 종전안을 건넨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여기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를 직접 확인한 적은 없다.
여러 보도를 통해 15개항에는 이란 핵시설 해체 및 우라늄 농축 금지, 보유 농축 우라늄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관, 역내 대리 세력 지원 금지, 호르무즈 해협 통행 보장 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이를 일축하고 10개항으로 구성된 수정 제안을 던진 상태다.
이란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 이란과 그 저항 동맹 조직(저항의 축)에 대한 침략 완전 종식 ▲ 중동 주둔 미군 철수와 역내 군사기지에서 이란 공격 금지와 전투태세 자제 ▲ 2주간 이란의 관리하에 호르무즈 해협 안전통항 프로토콜에 따른 일일 통행량 제한 ▲ 모든 미국과 유엔의 대이란 제재 완전 해제를 요구했다.
또 ▲ 투자 펀드 조성으로 전쟁 피해 배상 ▲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이란의 약속 ▲ 우라늄 농축도에 대한 협상과 농축권 인정 ▲ 중동 국가들과 양자·다자간 평화 협정 체결 ▲ 모든 '저항의 축'(이란과 그 대리세력)에 대한 모든 침략자의 불가침 확대 적용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든 대이란 결의 종료 등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협상 기본 판이 짜인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통행, 이란 핵, 이란의 대리 세력 지원, 제재 해제 문제가 협상 성패를 좌우할 핵심 의제이자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전쟁 시작 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 경제를 위협 중인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는 최우선 의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휴전 조건으로 이란이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란은 여전히 극소수 선박만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나아가 '주권'을 내세우며 종전 뒤까지 '해협 관리권'을 유지하고 제도화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란 정권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핵무기보다 호르무즈 해협이 더 강력한 무기'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따라서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 제재 전면 해제 등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에너지 가격 폭등 사태를 불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줘 미 대표단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에 협상력을 집중해야 하는 처지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 협상 전망 기사에서 "미국 측의 핵심 요구 중 하나는 전 세계 해상 석유의 4분의 1과 천연가스의 5분의 1을 운반하는 중요 수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협상 전체 판도를 좌우할 핵심 난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통행료를 미국과 이란이 '공동 징수'하는 아이디어를 공개 거론한 바 있어 의외로 양국이 '공동 이익'을 고리로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어 이란 핵 문제는 이번 협상의 본질적 영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란 핵 개발 저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 나선 핵심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란이 가진 고농축 우라늄 처리와 '평화 이용'을 명분으로 내세운 농축권 유지 요구 등에서 얼마나 미국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를 넘어서는 합의를 수중에 넣어야 이란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한 이란 핵 합의 탈퇴를 감행한 바 있다.
JCPOA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를 3.67%로 제한하고 이미 보유하던 고농축 우라늄은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로 반출하거나 저농축 우라늄 수준으로 희석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이란이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가자지구 하마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같은 대리 세력을 지원하는 문제도 협상 중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의 일원인 여러 대리 세력이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못지않은 중동 지역 안보 불안 요인으로 간주한다. 반대로 이란은 언제든 자국 국경 밖에서 '제2 전선'을 활성화할 수 있어 대리 세력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고 있어 양측 간의 접점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 헤즈볼라를 계속 공격하고, 이란은 이를 휴전 조건 위반으로 주장하면서 레바논 휴전을 대미 협상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란의 이런 태도는 이란의 대리 세력 지원 문제가 이번 협상에 상당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호르무즈 해협, 이란 핵, 대리 세력 이슈와 비교한다면 이란 제재 해제 문제는 상대적으로 미국과 이란 대표단이 접점을 찾기 쉬운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협상 판을 좌우하는 카드로 내세우려 하는 것처럼 미국 역시 이란의 핵심 의제 양보 수준에 연동해 제재를 단계적, 점진적으로 풀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도 당장 협상장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1천억달러(약 14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자국 동결 자산 해제부터 요구했다.
이 밖에도 이란은 중동 지역 미군이 모두 철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이란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작아 이란이 일단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요구안에 이를 포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등 지역을 위협하는 군사력에 제한을 둘 것인지 문제도 민감한 의제다. 다만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면서 협상력이 강해진 이후에 탄도미사일 능력 제한에 관한 미국 측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아진 면이 있다.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 대표단은 협상 개시 전부터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샅바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10일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에 취재진에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란에 '장난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도 함께 내놨다.
이란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이에 레바논 휴전과 동결 이란 자산 해제가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게시물을 엑스에 올리면서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협상장에 앉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