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성진 카럼] 다시 부국강병의 길로

2026-03-16 (월) 12:00:00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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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14일째 계속되고 있다. 국제 질서는 힘이 지배한다는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국가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의 당위성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경제력이 압도적이고 군사력이 막강한 나라라면 누구도 감히 넘볼 엄두를 낼 수 없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국인 우리나라는 과연 지금 그러한가.

돌이켜 보면 17세기 조선에는 부국강병의 호기가 있었다. 1653년 8월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 일행이 우리나라로 표류해 왔다. 제주도에 표착한 이들의 배에는 약 30문의 대포와 갖가지 최신식 총들이 다수 실려 있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이 불탔던 효종은 이들의 무기를 참고해 화기를 개량했다. 하지만 하멜 일행이 가진 유럽식 망원경, 첨단 선박 구조, 천체관측술, 항해술 지식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군 육성 열망이 강했던 효종이 왜 부국강병의 길을 외면했을까. 당시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하멜 일행의 군사기술을 전폭 수용하지 못한 데는 정치의 제약이 컸다. 극심했던 정쟁에 발목이 잡힌 효종은 군사훈련 강화 등을 시늉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강력한 상비군 체제를 뒷받침할 경제·재정 혁신에는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효종은 하멜 일행이 가진 군사 지식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이들을 한낱 구경거리로 여긴 듯하다. 13년 만에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한 하멜은 “왕은 우리에게 우리나라의 춤과 노래를 보여 달라고 했고…”라고 ‘하멜 표류기’에 썼다.


18세기 정조의 부국강병책은 달랐다. 정조는 무기 개발과 함께 경제 발전의 토대를 튼튼히 다졌다.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해 서울 상권을 개방하고 민간 상업을 장려해 경제 규모를 키웠다. 수레·선박 이용을 장려해 물류를 활성화하고 동전 유통도 확산시켰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해 규장각을 정책 싱크탱크로, 장용영을 왕실 친위부대로 신설하는 등 통치 시스템도 일신했다. 만약 하멜 일행이 국방력 강화와 정치·경제 개혁을 병행한 정조 때 왔거나 정조가 하멜 표류 때 임금이었다면 우리 역사는 다르게 전개됐을지도모른다. 그러나 정조 이후 조선은 부국강병의 꿈을 다시는 꾸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국강병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주국방을 기치로 스마트 정예 강군 육성, 인공지능(AI)·첨단산업 중심의 경제력 강화, 방산 수출력 증진 등에 매진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지난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힘을 더 키워야 한다”며 자주국방을 역설했다.

자주국방은 부국강병의 군사적 핵심 요체다. 내 힘으로 내 나라를 지킬 힘을 갖겠다는 데 반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굳건한 한미 동맹이 한반도 안보에 핵심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엄연하다. 당장 이란 전쟁 여파로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미사일, 사드 등 핵심 전력이 한반도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안보 공백’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례 연합연습 ‘자유의방패(FS)’를 앞두고 훈련 규모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된 것도 한미 동맹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이 와중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일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을 찾아 “국가 핵무력은 다각적인 운용 단계로 이행했다”며 핵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분단의 사슬에 묶여 안보의 사활을 한미 동맹에 걸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이 대통령의 부국강병책은 훨씬 복잡다단하고 험난할 수 있다. 그래도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부국강병의 길은 반드시 가야 한다. 그리고 선택은 과감한 경제 개혁을 발판으로 부국강병의 꿈을 키웠던 정조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퇴행적 정치에 발목 잡힌 하멜 표류 때의 효종은 물론 정조 이후 순조·헌종·철종·고종 때의 부패한 세도 정권의 전철은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최근 X(옛 트위터)에 올린 “대통령이 되고 집권 세력이 되었다고 마음대로 다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라는 글은 울림이 있다. 다산 정약용도 국가 생존의 최고 방책을 묻는 정조에게 “사람 사이에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소통의 리더십이 결여된 부국강병의 꿈은 사상누각에 그칠 수 있다.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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