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어떤 인생

2026-03-13 (금) 07:29:09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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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읽다 보면 나이 때문인지 소설보다 소설을 쓴 사람에게 새삼 관심이 간다. 이런 소설을 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작가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삶 말고, 진정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다시 읽다 궁금해졌다. 와일드는 어떤 사람이기에 도리안 그레이라는 고딕 형의 주인공을 만들었을까?

그래서 옥스포드를 나온 댄디 신사 정도로만 알던 작가를 뒤져보게 됐다. 알고 보니 그는 사회적으로 최고의 집안에서 태어나 최하위 비렁뱅이로 죽은 작가였다.


그의 아버지는 외과의사,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천재적이라 할 만큼 머리가 좋고 경제력까지 갖추어 온갖 상을 휩쓸며 옥스퍼드에 들어갔다. 멋쟁이와 괴짜로 학교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자기 방을 해바라기와 백합과 도자기로 장식하고, 한껏 잘난 척을 일삼았다. 이런 지나친 자긍심과 호기심이 그를 성공한 작가로도, 또 몰락한 셀럽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풍자와 재치로 작가며 재담가로서 인기를 끌었다. 연극단과 함께 뉴욕에 왔을 때에는 신고할 게 무엇이냐는 세관원의 질문에 자신의 ‘천재성’ 외에는 없다고 답했다. 그만큼 그는 잘 나가고 있었고, 과장된 어법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언제나 옷에 해바라기나 백합꽃을 꽂고 인기를 구가했다. 그의 만담에 가까운 강연은 그를 셀럽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지적 광대’라고도 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풍자적인 스탠드 업 코미디언 같은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는 운문으로 출발했지만 1890년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다음해 희곡 [살로메] 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살로메]는 그가 불어로 쓴 작품인데, 이걸 옥스퍼드 학생 알프레드 더글라스가 영역했다. 이를 인연으로 두 사람이 만난 게 1891년. 이 인연이 결국 와일드를 처절한 몰락으로 몰고 갔다.

후작의 아들로 집안 좋고 건방지고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더글라스를 보고 와일드는 사랑에 빠졌다. 일생 멈출 줄 모르던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성정체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더글라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바쳤고, 공공연히 애인 행세를 했다. 이를 알게 된 후작이 비난하자 그는 도리어 후작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최악의 악수를 둔 셈이다. 때는 동성연애자들에게 사형 선고도 내려지던 19세기. 법정에서 건방을 떨던 그는 도리어 후작에게서 맞고소를 당했고,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친구들이 도망갈 기회를 마련해 주었지만 그는 소크라테스를 흉내 내고 싶었는지 이를 마다했다.

현타가 온 건 감옥에서다. 그는 “새로운 센세이션을 찾아 일부러 추락했다”고 호언했지만, 독방에 갇히자 회한과 우울에 시달렸다. 출소하고 나서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름을 바꾸고 프랑스로 건너가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며 살았다. 자신이 좋아하던 그리스 비극처럼 극적으로 살던 그는 1900년 가난과 병고로 46세에 생을 마감했다. 타고난 천재성도 함께.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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