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지인들이 연이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겼다. 교단은 다르지만 형님처럼 가깝게 지내왔던 한 목사님이홀연히 주님께로 갔고, 이전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했던 한 집사님도이 땅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주님나라로 이주했다. 또한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늘 기도해 주셨던 선배목사님 사모님도 세상 삶을 마감하시고 하늘나라의 생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지난주말 동기 목사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황급히 천국행 기차를 타고 저 하늘로 갔다. 아니, 이 분들 모두 하나님께서불러주셨다. 나는 두 분의 장례예배에는 조문객으로 참석했고, 선배목사님 사모님의 장례예배는 직접 집전했다. 다른 수식어 필요없이 이 분들은 그냥 좋은 분들이었다. 부드러운 심성과 따스한 영혼을 지녔고 한결같이 신실한 신앙인들이었다. 가정에서는 헌신적 부모요 자상한 배우자였고 교회에서는 경건한 예배자, 지혜롭고 성실한 일꾼이었다. 때로의 척박한 환경에도 자존심을 품위있게 지켰고 시, 음악, 문학을 논하며 즐기는 감성도 있었다. 이렇듯 믿음 안에서 따뜻하고 열정적으로 사신 분들이기에 넉넉히 천국갔다 확신하면서도 더 이상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수 없다 생각하니 마음 한켠 서글프고 안타깝다.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하다. 이 분들이 아프고 힘들어 할때 좀 더 위로하고 작은 힘이라도 되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구실로 그렇지 못해서 송구하기도 하다.
의학적으로 죽음은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이며 의식의 사라짐이다. 죽음은 모든 삶의 행진에의 멈춤이며 실존과 현실세계와의 단절이다. 사람은 죽음과 함께 일생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다. 생명은 물론 소유, 지식, 업적, 공적, 자리, 명예, 우정, 사람관계등.. 그리고 다른사람들로 부터 서서히 잊혀져가면서 망각의 세계로 파뭍힌다. 따라서 아무리 유려하고 우아한 말로 미화시켜도 죽음은 슬픔, 고통, 허무, 아쉬움, 안타까움, 비통함이다. 죽음은 삶에 가장 큰 원수로 생명에 종지부를 찍는 슬픈 이야기이며 서글픈 역사이다. 믿음과 무관한 세상적 관점에서의 죽음은 그렇다.
헌데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세상과는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즉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상태로 들어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죽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지속되었던 영과 육의 싸움을 종식시키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해방을 얻게 하는 영적사건으로 믿는 이들은 죽음과 함께 영원천국에 들어가서 예비된 상급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이땅에서의 육체의 죽음은 그냥 끝이아닌한생의완성이다. 하나님께서각사람에게이루시고자하는목적이있는데우리가 그것을감당하고이루어감을사명이라한다. 죽음은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성하는것이다. 예수님께서십자가위에서하신여섯번째말씀은 ‘다이루었다’(요 19:30)였다. 이는하나님께서주신사명을스스로 다이루었다는의미, 즉완성에의고백이다. 또한예수믿은이에게죽음은삶과그이유가같다. 믿는이들은주님을영접하는순간자신을위해살지않고주님을위해 살며, 자신을위해죽지않고주님을위해죽는다. 즉삶과죽음의이유가동일하다. 롬 14:7,8은삶과죽음의동일성에대해말한다. "우리중에누구든지자기를위하여사는자가없고자기를위하여죽는자도없도다. 우리가살아도주를위하여살고죽어도주를위하여죽나니그러므로사나죽으나우리가주의것이로다.”
성도로서의 죽음이 이러하기에 믿음으로 산 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죽음도 의미있고 귀하고 복이 된다. 성경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라”(계14:13) 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이들은 인간적으로는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비통해 하면서도 예배드리고 찬송부르며 위로를 받고 심령의 평안을 누린다. 또한 훗날 천국에서의 만남을 소망 중에 기대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번뿐, 유일회적이다. 참으로 귀하디 귀한 인생이다. 주님을 제대로 믿고 제대로 살고 제대로 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