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야자수 그늘아래서

2026-02-25 (수) 07:23:27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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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병오년 새해도 이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누구나 새해의 계획을 세워보고 미진했던 시간을 뒤로한채 새로운 희망속에서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뉴욕의 긴 겨울, 추위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가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두 아들이 사는 곳을 자주 들락거리는데 언제나 갈때마다 느끼는 건 따뜻하게 느껴지는 야자수다. 캘리포니아를 지나 네바다로 들어서면, 사막 위에 홀로 서 있는 화려한 건물들과 야자나무 숲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해의 첫 여행은 샌디에고와 라스베가스로 다녀왔다. 건조함 속에서 해 질 무렵 야자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서부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며 그때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막의 풍경 대신, 인간이 만든 화려한 네온사인과 자연이 만들어 낸 조화를 느끼고 밤과 낮의 느낌은 다르지만 여유스러운 기분은 같다.


아들이 사는 집 근처에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라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잔잔하면서도 넓은 호수가 있어 그 깊고 아름다운 신비함에 어찌나 반갑던지 이런 것이 건조한 도시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나 사막의 야자수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느꼈던 여유로운 여행이 주는 기쁨에 마음 한켠이 잔잔히 스며든다.

여행이란 현실을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는 작은 오아시스를 마음에 담아두는 일이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다.

여행 중 느끼는 낯설은 느낌과는 다른 나만의 고독 속에서 깨닫는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동부와 서부, 서로 다른 기후와 환경 속에서 순간의 기쁨을 음미하고 눈앞의 풍경에서 위안을 찾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뉴욕의 추위와 서부의 뜨거움, 고요함과 화려함,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 모든 대비 속에서 우리는 신과 닿는 투명줄을 붙잡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며 살아간다.
사람관계도 서로 공감하고 이해가 있는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고 자연과의 만남도 작은 기쁨에서 설레는 봄을 기다려야한다.

어느 도시를 가든 삶의 균형을 찾고 느끼는 건 언제나 낮은곳에서 부터 배우며 깨닫게 되는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조화로운 순간을 만끽하고 마음속 작은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었다.
마음에 오아시스를 심어 힘들때나 고독이 올때 마음의 중용을 지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것,삶의 지혜이다.

언젠가 아들과 호숫가를 지나며 사진을 찍었듯, 이번에는 커피를 마시며 야자수 그늘아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까이 있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가정을 이루었는지 문득 실감하게 된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조용히 묻는 사이가 되었다.

햇살이 야자수 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가정에 앞날이 이 빛처럼 밝고 평온해지길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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