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5년도 과거로 접혀졌다. 작년이 되어버렸다. 이젠 작년을 살았던 어떤 날도 되돌릴 수 없다. 인간사의 단호함이 주는 장치다. 그렇다하여 되돌리고 싶은 날이 딱히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는 존재하니 낙수(落穗)가 없을 수는 없다.
인디언에게는 재미난 풍습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화나는 일이나 낙심 되는 일이 있을 때는 마을에서 떨어진 산이나 계곡에 가서 땅을 파고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실컷 욕을 하고 울기도 한 다음 그 구멍을 흙으로 덮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시는 그 일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리 쉬운 존재인가. 아무리 구멍을 파고 거기에다가 한(恨)을 쏟아 넣고 덮었다 해도 그때뿐이다.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추억과 함께 하산(下山)한다. 과거란 그렇게 끈질긴 요물이다.
하여, 언제나 새날 즈음엔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어제를 기억하지 말라는 명제도 있지만 그것은 그대로 허례허식과도 같다. 그냥 또 하루가 가는가보다, 오는가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생각의 다리들이 겹겹이 놓여 있다.
그래도 문득 생각해보면 과거라는 삶속에다가 많은 것을 버리고 잊으려 애를 쓰며 살아왔다. 문제는 그 버림 속에는 정작 귀한 것이 많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버리지 않아야할 것을 버리고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은 지니고 사는 셈이다.
그리고 내 삶을 온전하게 유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남 탓이 아니다. 어떤 이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나도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후회가 많다는 것을 넘어, 살아온 생애 자체가 후회로 점철된듯해서 삶에 염치가 없을 뿐이다.
5세기 중엽 로마는 다른 별과 충돌하여 망한다는 예언이 있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그 예언을 믿고 불안과 초조로 그 날을 기다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날은 무사했다. 그렇지만 로마는 몇 년 안 가 진짜로 망했는데, 그 원인은 별에 있었던 게 아니라 그 나라 스스로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로마의 멸망은 로마 자체, 그 내부에 원인을 지니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 질병이 “로마 병(病)”인 셈이다.
인생의 여정도 이와 흡사하다. 다른 인생은 차치하고 내 인생이 그렇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소중한 것을 스스로 버리며 살아왔다.
정말 인생에 70이라든지 80이라든지, 그런 수명을 가리키는 숫자가 불시에 닥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불혹(不惑)이니 지천명(知天命)이니, 심지어는 이순(耳順)을 살 때도 미구에 닥칠 숫자를 경계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우매한 태도였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형이상학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렸거나 바꿨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뒷북을 치는 인간의 처연함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눈을 뻔히 뜨고서 그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온 셈이다. 시간보다 시계를 소중하게 여겼던 인생이다.
하찮은 지혜, 하찮았다고 생각했던 사랑, 그저 지나가리라 여겼던 일상이 훗날 가슴을 저리게 하고 아픈 상처로 남아 지금 황혼을 가는 길목에서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나면 반드시 그 결단을 후회하게 된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인생 자체가 그런 모순을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죽어라 하고 살아서 2026년 언덕에 올랐다고 하지만 사실은 어쩌다보니 여기에 있을 뿐이다.
그때 그 세월에서는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다뤘던 것들이 지금 보니 허접한 것들이었다는 만감의 교체다.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는 청맹과니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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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