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F. 윌 칼럼] ICE를 믿어선 안되는 이유

2026-02-02 (월) 12:00:00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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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놈은 출간을 앞둔 자신의 회고록 원고에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그같은 만남이 픽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놈은 그 ‘일화’는 책이 나오기 전에 ‘조정’될 것이라고 얼굴조차 붉히지 않은 채 태연히 말했다.

연방 의원과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를 역임한 놈은 현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이민세관단속국(ICE)을 감독하고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의 개인적 성향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감독하는 ICE를 신뢰하지 않고, 또 신뢰해서도 안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시작된 사회적 파장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방대한 정보에 즉각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스마트폰이 가져온 특출난 결과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같은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부정적인 결과다. 그러나 이 기기가 주는 혜택 가운데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거의 항상 비디오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정부들은 자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첨단기술을 활용한다. 이들 중 일부는 불법적인 기술까지 동원한다. 미국의 중앙, 주 및 지방 정부들도 이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방에 깔린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시민에 의한 정부의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헌법적 권리를 행사해 정부의 잘못을 시정해줄 것을 청원하거나, 이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활동을 지켜본다. 1963년 5월의 사례에서 보듯 그래픽 저널리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당시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공안 커미셔너였던 테오피러스 유진 ‘불’ 코너는 강력한 소방호스와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개들을 동원해 젊은 흑인 민권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미국인들은 정부가 거리에서 저지른 만행을 담은 사진과 영상에 경악했고, 큰 수치심을 느꼈다.

미네아폴리스는 오늘날의 버밍햄이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언론인들의 취재활동를 보완하고 있다.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해하게 만들 것인지 끊임없이 떠들어댈 현 중앙 행정부가 (그린란드, 백신과 많은 다른 사안들과 관련해) 연이어 망신을 당하는 모습은 분노를 자아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편하면서도 숭고한 느낌을 준다. 트럼프 행정부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폭력집단에 의한 통치(loutocracy)’라는 새로운 정부 유형을 추가해야 한다.

폭력배들에 의한, 폭력배들을 위한 정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엿보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미네소타 시민들의 찍은 영상을 찾아보라.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가스와 섬광탄 등 각종 진압장비가 총동원된 시위 현장에서 한 참가자는 “마치 ‘콜 오브 듀티’같아. 멋지지 않아?”라고 외쳤다. 신입 요원들은 비디오 게임인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외에 최고 5만 달러까지 지급되는 계약금에 현혹됐고, 이를 연료삼아 ICE는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경찰 업무는 어렵고 위험스런 직업이다.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기강이 잡힌 경찰관들의 올바른 판단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사회는 이들에게 경외에 가까운 존경심을 표해야 마땅하다. 현 행정부는 경찰 업무와 군사 작전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폭력을 일삼는 ICE 요원들이 경찰 행세를 하도록 방임함으로써 경찰 업무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는 법집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체포한 용의자들을 너무 친절하게 대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국제경찰서장협회는 “물리력 사용 관리는 치안기관들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라며 대통령의 어이없는 주문에 즉각 반응했다. 이들은 “물리력이 신중하게 적용되고 객관적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사용되도록 일선 법집행 요원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필요한 정책과 절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당부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포함한 모든 신뢰는 성공적인 사회에 협력적 역동성을 위한 필수적 결속력을 제공하는 접착제와 같다. 정부가 공적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신뢰 상실이 발생할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ICE와 광기에 휩싸인 이민자 추방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하는 모든 말은 사실이 입증될 때까지, 혹은 놈이 말하듯 잘못이 ‘조정’될 때까지, 거짓으로 추정해야 한다. 이것은 현명한 판단이라기보다 선량한 시민의식이다.

행정부의 일부 무뢰한들은 가장 최근 연방 요원에 의해 사살된 미네소타의 희생자를 암살 시도자‘ 혹은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공화당이 의회 상원 상임의원회의 의사봉을 모조리 손에 쥐고 있는데다 대통령이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안하무인격으로 날뛰는 ICE는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놈을 비롯해 자격미달의 각료들을 줄줄이 인증함으로써 불명예를 자초한 상원이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껴 태세를 전환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앞으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은 더 많이 나올 터이고 희생자에 대한 정치적 비방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ICE의 추악한 행태가 계속된다는 것은 폭력배에 의한 통치라는 현 행정부의 약속이 역겨운 방식으로 지켜진 것을 뜻한다.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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