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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사 추천 여행지 잉카 문명의 수도, 페루 쿠스코와 마추픽추

2026-01-30 (금) 05: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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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스코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 여전히 신비스러운 공중도시 마추픽추 제국은 사라졌지만 곳곳에 번영의 흔적

탑여행사 추천 여행지 잉카 문명의 수도, 페루 쿠스코와 마추픽추

잉카제국의 놀라운 건축술을 보여주는 마추픽추.

잉카 문명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 여행은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작된다. 잉카 시대에는 제국의 공식 의식과 행렬이 열리던 공간이었고, 오늘날에는 대성당과 라 콤파냐 교회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 광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코리칸차에 닿는다. 원래는 태양신 인티를 모시던 신전으로, 내부 벽이 금판으로 덮여 있었던 곳이다. 스페인은 이 신전 위에 산토 도밍고 수도원을 세웠지만, 아래쪽 잉카의 곡선 석벽은 그대로 남아 있어 잉카 건축의 정밀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쿠스코 시내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사크사이와만이 있다. 흔히 요새로 불리지만, 종교·군사 기능을 모두 갖춘 복합 공간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거대한 석재들이 톱니처럼 맞물린 성벽은 잉카 석공 기술의 정점으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쿠스코 전경은, 도시가 왜 제국의 중심이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쿠스코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풍경은 점차 부드러워지고, 여행은 우루밤바 계곡으로 이어진다. 이 지역은 해발 고도가 쿠스코보다 낮아 기후가 온화하고, 잉카 시대에는 옥수수와 감자의 주요 생산지였다.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잉카의 경제·군사·농업이 집중된 핵심 지역이라는 의미다.

우루밤바에서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은 피삭이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계단식 농경지와 요새 유적은 잉카의 토목 기술을 잘 보여준다. 특히 고도에 따라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실험적 농업 시스템은, 이곳이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제국 차원의 농업 연구지였음을 말해준다. 아래쪽 마을의 시장은 여행자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로, 전통 직물과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계곡을 더 따라가면 올란타이탐보에 이른다. 이곳은 잉카 도시 구조가 현재까지 유지된 보기 드문 장소다. 돌로 포장된 골목, 배수로, 주거 구역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위쪽에는 거대한 요새 겸 신전 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올란타이탐보는 스페인 정복기에 실제로 잉카가 승리를 거둔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시에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거점이어서, 대부분의 여행자가 반드시 거치게 된다.

우루밤바 계곡에서 마추픽추로 이동하는 과정은 여행의 분위기를 바꾼다. 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계곡은 좁아지며, 정글의 기운이 느껴진다. 해발 2,430미터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고립된 위치 덕분에 스페인 정복 당시 발견되지 않았다. 1911년 하이럼 빙엄에 의해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이 도시는 거의 잊힌 상태로 남아 있었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중반 파차쿠티 황제 시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용도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왕실 휴양지이자 종교·천문 관측의 중심지였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도시는 주거 구역, 종교 구역, 농업 테라스로 명확히 나뉘어 있으며, 배수 시스템이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태양의 신전이다. 곡선 형태의 벽과 창은 동지와 하지에 태양빛이 정확히 들어오도록 배치되었다. 인티와타나는 ‘태양을 묶는 돌’이라는 뜻으로, 천문 관측과 의례에 사용된 장소다. 이 돌은 잉카가 시간을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측정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도시 전반에 걸친 계단식 농경지는 식량 자급뿐 아니라 토양 유실과 빗물 배수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능을 했다.

쿠스코, 우루밤바, 마추픽추는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장소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었고, 우루밤바는 그 제국을 먹여 살린 생활의 공간이었으며,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의 기술과 세계관이 응축된 상징적 장소였다. 이 세 곳을 차례로 방문하면, 위대한 잉카 문명의 흔적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다. 잉카는 제국을 잃었지만, 돌과 길과 농법 속에 남아 여전히 현대의 페루 사회의 근간으로 살아있다.

잉카 문명은 13세기경 안데스 산맥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초까지 존속한 남아메리카 최대의 제국이었다. 중심지는 쿠스코였으며, 잉카인들은 이 도시를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다. 잉카의 통치자는 태양신 인티의 후손으로 여겨졌고, 종교와 정치 권력은 분리되지 않았다.

잉카 제국의 본격적인 확장은 15세기 파차쿠티 황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는 쿠스코를 재건하고 제국을 행정 단위로 조직했으며, 도로망과 창고 체계를 정비했다. 문자 대신 키푸라는 매듭 기록을 사용했지만, 인구와 세금, 물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계단식 농경과 관개 기술을 통해 고산 지대에서도 안정적인 농업을 유지했다.


잉카의 통치는 군사력과 행정력이 결합된 형태였다. 정복지에서는 현지 지배층을 유지하는 대신 태양신 숭배와 조공, 노동 의무를 요구했다. 노동은 세금의 역할을 했으며, 국가는 이를 통해 도로, 요새, 농업 시설을 건설하고 기근에 대비했다.

종교는 잉카 사회의 핵심이었다. 태양, 산, 강 등 자연 요소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고, 천문 관측은 농업과 제의에 활용되었다. 마추픽추는 이러한 종교적·천문학적 기능을 수행한 왕실 및 의식 중심지로 해석된다.

16세기 초 유럽에서 전파된 천연두로 황제와 후계자가 사망하면서 제국은 내전에 빠졌다. 이 혼란 속에서 1532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침입했고, 카하마르카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했다. 막대한 금과 은을 몸값으로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아타우알파는 처형되었다.

1533년 쿠스코가 함락되며 잉카 제국은 붕괴되었지만, 저항은 계속되었다. 만코 잉카는 반란을 일으켰고, 빌카밤바에서는 잉카 왕국이 약 30년간 존속했다. 1572년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의 처형으로 잉카 국가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잉카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케추아어(안데스 지역 언어), 전통 농법, 공동체 중심의 생활 방식은 오늘날까지 안데스 지역에 남아 있으며, 잉카 문명은 패배한 제국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문화로 평가된다.

여행메모
탑 여행사의 남미일주 투어에 조인하면 쿠스코, 우루밤바, 마추픽추를 비롯한 페루 일주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과수 폭포 등을 여행할 수 있다. 올해 탑 여행사의 남미일주는 13일 일정으로 3월 16일 출발한다.
문의 (703)543-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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