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의 적은 나의 적?”… ‘트럼프 사병’ 전락한 ICE

2026-01-27 (화) 12:00:00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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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원 2배 늘려 졸속 선발
▶ 불체자 단속 임무 명분

▶ 반대 시위자 무차별 폭력
▶ 자국민 살해에 여론 급랭

“대통령의 적은 나의 적?”… ‘트럼프 사병’ 전락한 ICE

지난 24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복면과 방독면 차림의 연방 이민단속 요원들이 최루탄을 쏘며 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등 미국 내 불법 체류자 단속이 임무인 미 ‘이민 경찰’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병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 안전 유지, 공중 보호라는 본령에서 벗어나 트럼프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면 자국민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당파적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늘면서다.

“마치 콜 오브 듀티 같잖아.”

지난 24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헬멧과 방독면, 위장복을 착용한 연방 요원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위대 방향으로 최루탄을 발사할 참이었다. 콜 오브 듀티는 전투 상황을 모의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흥분을 참지 못한 그가 내뱉었다. “정말 멋지지 않아(So cool, huh)?”


재향군인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던 37세 남성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가 이민 단속 작전에 투입된 국경순찰대 요원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날이었다. 프레티가 총을 소지한 채 다가와 요원들이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연방 국토안보부(DHS) 해명이었지만 목격자 촬영 영상에는 주장과 어긋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1월에만 두 번째였다. 1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같은 나이의 세 아이 엄마 러네이 니콜 굿이 당한 게 고작 17일 전이었다. 시위대는 항의하고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년 전 첫 대통령 취임 때 자국 현실을 ‘미국 학살(American carnage)’이라고 묘사했다. “가난, 불법 체류자, 문 닫은 공장, 범죄로 가득하다”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학살을 끝내겠노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참상은 여전하다는 게 25일 영국 가디언 지적이다. “미국 대통령은 내전이나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주요 도시 거리에 ICE 요원들을 배치하는 식으로 그것(학살)을 확실히 현실로 만들었다”고 신문은 꼬집었다.

ICE 창설 계기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알카에다에 의한 2001년 9·11 테러였다. 2002년 제정된 국토안보법(HSA)에 따라 불법 체류자와 테러범을 색출할 목적으로 2003년 설립됐다. 원래부터 경찰보다 법 집행 권한이 크고 활동에 제약이 적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사실상 이들의 한계를 지웠다. 23일 AP통신은 법원이 발부한 수색 영장 없이도 ICE 요원들이 사람들의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가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굿이 피격으로 희생되자마자 J.D. 밴스 부통령은 가해 요원이 절대적인 면책 특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가 진보 성향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들의 무소불위 전횡이다. 비무장 시민을 총으로 사살한 게 전부가 아니다. 가정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바지 차림의 50대 라오스 출신 귀화 시민을 영하 10도의 눈밭으로 다짜고짜 끌어내는가 하면, 에콰도르 출신 5세 아동을 가족을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쓰기도 했다.

ICE는 한 해 만에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지난해 초까지 1만 명 정도였던 현장 인력이 올 1월 초 현재 2만2,000명가량으로 늘었다는 게 DHS의 발표다. 선발 과정이 졸속이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적극적으로 유인한 집단이 극우 정치 성향을 가진 남성 청년층이다. 진보 성향 미국 매체 트루스아웃에 따르면 총기 박람회나 UFC(종합격투기 단체) 경기장, 로데오(길들이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타고 버티는 경기) 행사장, 무술 센터 등에서 빈번하게 채용이 이뤄졌으며 지원 후보자는 외국 침략자를 격퇴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과 고용될 경우 5만 달러의 계약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고 한다.

훈련을 충분히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다. 가디언은 “현재 미네소타주에 배치된 ICE 등 연방 이민 단속 요원 약 3,000명 중 상당수는 복면을 쓰고 무기를 휴대한 채 거만하게 행동하지만 시위 대응 등에 필요한 진정 기술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상태일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자국민 희생이 잇따르며 트럼프 행정부는 사면초가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골수 보수 단체로 꼽히는 총기 소지 권리 옹호 단체들까지 25일 성명을 내고 프레티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연방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25일 미네소타 연방법원은 프레티 사망 사건 관련 증거를 보존하라고 DHS에 명령했다.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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