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은 놈이 통째로 썰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정겨운 너스레와 함께 용가자미(현지명 어구가자미)가 툭툭 바구니에 담긴다. 오랜만에 많이 잡힌 오징어와 한창 제철을 맞은 검복(현지명 밀복)을 한 마리씩만 맛보려 했건만, 아무래도 먹을 복이 터졌나 보다. “여기까지 온 김에 맛보라”며 용가자미 두 마리와 멍게 네 알까지 덤으로 받아버렸다. 한반도에서 깨끗하기로 으뜸인 동해의 신선한 바다 내음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잔뜩 오른 기름기와 쫀득한 찰기에 입이 즐겁고 너그러운 인심에 마음과 배가 든든하다. 우리 수산물은 겨울에 제철을 맞이하는 것이 많다. 봄과 초여름에 산란기가 많이 몰린 데다가 바다 수온이 내려가 한껏 살을 찌우는 해양 생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바다는 역시 동해다. 세 바다 중 애초부터 가장 찬 바다인 만큼 겨울바다의 특징이 가장 도드라진다. 제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바닷가 마을은 굶주림을 비껴갔다고 했다. 강원 북부의 세 도시 강릉·속초·고성에서 겨울바다의 풍성함을 찾아 나섰다.
■ 동해 명물 가자미 대표주자 ‘용가자미’동해 하면 가자미, 강원도 하면 가자미다. 남해와 서해를 대표하는 물고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지 몰라도 동해는 명실상부 가자미다. 연초 겨울은 동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기름가자미(현지명 미주구리)와 용가자미는 물론 가자밋과의 ‘황제’ 줄가자미(현지명 이시가리)까지 줄줄이 제철을 맞는 시기라 ‘역시 겨울은 동해’라는 명성을 재확인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줄가자미, 활어가 없는 기름가자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면 용가자미를 권한다. 인지도는 다소 부족하지만 맛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표준명은 용가자미이지만 잡히는 지역에서는 지역명을 접두사로 붙여 부르기도 한다. 강원 속초에서는 ‘속초가자미’, 경북 포항에서는 ‘포항가자미’라고 부르는 식이다. 지역명을 음식 앞에 붙이는 것은 흔히 자부심의 표현이다. 현지에서 용가자미를 얼마나 쳐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항을 제외한 영남 지방에서는 ‘참가자미’로 부르기도 하지만 표준명 참가자미와는 다른 종이다.
3월부터 산란기를 맞는 용가자미는 1, 2월이 최고로 맛이 좋을 시기다. 산란을 앞두고 체내에 영양소를 잔뜩 비축해 감칠맛과 기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산란이 아직인 어린 개체라도 한결 추워진 바다에 적응하느라 맛이 좋을 시기다. 가자미답게 뼈째썰기(세꼬시) 회가 별미다. 손바닥만 한 작은 개체도 뼈째 썰어놓으면 뼈의 고소한 맛이 살과 어우러져 어지간한 고급 횟감 부럽지 않다. 한 젓가락 가득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면 잘게 다져진 뼈가 토독토독 터진다. 세꼬시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연하고 풍미가 좋다.
최고급 횟감인 줄가자미와 비교했을 때 기름기가 다소 덜하지만 비슷한 계열의 맛이다. 값을 생각하면 감격스럽다. ㎏당 10만 원을 호가하는 줄가자미와 달리 용가자미는 다른 횟감에 끼워 덤으로도 줄 만큼 경제적이다. 기자도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 수산물 좌판 풍물시장에서 2만 원 조금 넘는 횟감을 구매하고 작은 용가자미를 두 마리나 덤으로 받았다. 저렴한 몸값이 무색하게 정작 ‘주인공’ 회가 뒷전이 될 만큼 계속해서 젓가락이 향했다.
용가자미는 동해 어느 수산시장을 가든 흔히 찾을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용처럼 비늘이 선명한 유안부(눈이 있는 쪽, 등)와 자색 ‘Y’자 무늬가 있는 무안부(눈이 없는 쪽, 배)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 겨울 한철 잡히는 ‘검복’가자미 못지않게 겨울에 일제히 제철을 맞는 어종이 또 있다. ‘치명적인’ 맛으로 유명한 복어다. 흔히 식용으로 소비되는 은복, 검복(현지명 밀복), 까치복, 자주복(현지명 참복) 전부 겨울이 제철이다. 이 중 양식을 하지 않고 전량 자연산에 의존하는 검복은 이 시기 어획한 것을 냉동해 연중 사용한다. 활검복이나 생물 검복을 맛보려면 오직 겨울 한철뿐이다. 검복은 동·서해 모두 서식하나 서해 검복은 제철인 늦가을~겨울을 제주도와 쓰시마섬(대마도) 일대에서 월동한다. 이 때문에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검복은 동해산이 절대다수다.
강릉 주문진항 일대가 주산지다. 연초 주문진항의 수산시장은 어느 점포든 검복을 잔뜩 준비해 놓고 있다. 전통시장에서도 널리 취급할 수 있는 이유는 복어치고 독성이 약하고 손질이 쉬운 덕이다. 난소, 알, 간은 여느 복어와 같이 맹독 테트로도톡신이 있지만 살과 정소는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다. 껍질에는 독이 있지만 현지에서 ‘독 없는 복’으로 통할 정도로 독이 없거나 약한 개체도 많다.
검복은 회로 먹을 경우 특유의 단단한 육질을 살리기 위해 보통 회보다 얇게 썬다. 투명한 옥빛 살 사이사이 얇은 실핏줄이 박혀 있다. ‘딱딱하다’고까지 표현되는 다른 복어회와 달리 적당히 오독한 식감이다. 용가자미의 진한 살맛과 달리 깔끔하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살맛이다. 대구의 별미가 이리(정소)인 것처럼 녹진한 정소를 별미로 친다. 껍질에 가시가 없어 껍질째 복어탕을 조리해도 까슬하지 않고 식감이 우수하다.
■ 잡어의 변신 ‘성대’동해안 시장에 가면 지나는 이의 눈길을 단숨에 잡아끄는 희한한 물고기가 있다. 열대어처럼 화려한 날개를 펼친 채 지느러미로 땅을 짚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성대’다. 울음소리를 들을 일은 좀처럼 없지만 부레를 이용해 두꺼비처럼 “꾸욱”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습성 덕에 성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평소에는 이름도 없이 ‘잡어 모듬’으로나 팔려나가는 운명이지만 겨울에는 다르다. 오직 성대를 먹기 위해 횟집과 시장을 찾는 사람도 있다. 무명의 엑스트라에서 단숨에 주연으로 신분 상승한 격이다. 이 한철만큼은 그럴 만하다. 회를 뜨기 전 몸통을 눈으로 훑어봐도 비늘이 터질 듯 살이 꽉 찼다. 속살을 들여다봐도 기대감이 부푼다. 누르스름한 빛깔의 속살 위로 허연 지방막이 ‘이래도 맛이 없을쏘냐’라고 외친다.
첫 점을 입으로 가져가자 ‘아 탄력!’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철 성대는 갓 잡은 활광어 못지않게 살이 쫄깃해 씹는 맛이 좋다. 씹을수록 성대의 강점인 은은한 단맛이 배어 나온다. 평소와 달리 살에 겨울 지방이 촘촘히 녹아 있어 질 좋은 흰살생선 회의 정석을 자랑한다. 특히 뱃살은 광어 지느러미(엔가와)를 씹는 것처럼 입안에서 기름이 줄줄 흐르는 기분이다. 대가리가 커서 수율은 좋지 않으나 ‘생선은 머리가 클수록 국물 맛이 좋다’는 격언은 성대에도 참이다. 살을 주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는 뼈를 취했다고 생각하자.
동해만의 특산품은 아니나 제철을 맞은 쥐치(참쥐치)·말쥐치와 벵에돔도 이 시기 동해안 수산시장의 단골이다. 쥐치는 말캉하면서도 꼬독꼬독한 식감이다. 곤약 젤리를 먹는 것 같다. 맛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청량한 편이다. 쥐치는 간이 별미로 취급되는데 홍어, 아귀와 더불어 드물게 간을 생식할 수 있는 어종이다. 회를 뜨기 전에 미리 ‘간을 달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일명 ‘4대 돔(돌·참·감성·벵에)’ 중 하나인 벵에돔은 봄·여름에는 ‘풋내’라고도 하는 초식 어류 특유의 잡내 탓에 횟감으로 기피된다. 하지만 늦가을~겨울이 되면 신기하게도 냄새가 사라진다. 풋내를 유발하는 해초 섭취량이 줄고 갑각류와 동물성 플랑크톤 섭취량이 늘어서 그러리라고 추정된다. 풋내가 사라진 벵에돔은 여타 돔에 뒤지지 않는 감칠맛이 입안에서 아스러진다.
■운이 따라줘야 구경이라도 하는 ‘독도새우’겨울 동해에 왔다면 ‘독도새우’를 노려보는 것도 좋다. 독도새우는 독도 근방 해역에서 잡히는 새우 3종(도화새우, 가시배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을 가리킨다. 겨울 즈음이 제철이지만 워낙 어획량이 적고 불규칙해 운이 따라줘야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귀한 몸이다. 이달 중순 사흘에 걸쳐 강릉·속초·고성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도화새우와 가시배새우(닭새우) 시장 물량은 전무했고 일부 전문점에서만 고가에 판매하고 있었다. 수소문하니 “닭새우는 워낙 조금 잡혀서 사입할 엄두가 안 나는 가격이고 도화새우는 그마저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산지에서도 이렇게 귀하니 수도권 내륙에서는 고급 일식집이나 소수의 전문점에서나 취급한다.
그나마 3총사 중 ‘막내’로 꼽히는 물렁가시붉은새우, 일명 ‘꽃새우’ 수조는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막내 독도새우라도 흔히 먹는 흰다리새우와는 격이 다르다. 껍질을 벗겨놓으니 칵테일 새우 크기로 쪼그라든 작은 몸통에서도 상쾌한 단맛이 흘러나온다. 살은 단단하지 않고 이를 대는 족족 적당히 으스러진다. 한두 번 대충 씹고 넘길 수 없다. 천천히 음미하며 완식해야 한다. 단가가 높다 보니 시장에서는 마리 단위로 구매해 그 자리에서 한 마리씩 맛보는 관광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전부 ‘새우’로 부르지만 영어권 국가에서는 흰대리새우와 대하 등 수상새아목 새우를 ‘프라운(prawn)’, 독도새우 등 생이하목 새우를 ‘슈림프(shrimp)’로 구분해서 부른다. 흔히 먹는 ‘슈림프 피자’는 사실 ‘프라운 피자’인 셈이다. 프라운이 탄력 있는 식감이 특징이라면 슈림프는 녹진하고 강렬한 감칠맛과 진한 단맛이 특징이다.
흔히 ‘단새우’로 불리는 북쪽분홍새우 역시 겨울 제철인 동해 새우(슈림프)다. 독도새우처럼 희소하지 않아 매일 적지 않은 물량이 현지 시장에 쏟아진다. 1만~2만 원이면 한 바구니 가득 가져올 수 있는데 이름처럼 달달한 살맛이 일품이다. 단새우의 원물 가격은 일반적으로 이처럼 저렴하지만, 통발로 조업한 단새우는 단가가 3배 넘게 뛴다. 새우를 다치고 죽게 하는 저인망(그물) 조업에 비해 선도가 월등해 맛을 아는 사람들은 기꺼이 웃돈을 준다.
시장을 돌아보니 최근 몇 년간 품귀 사태가 계속돼 ‘금징어’에 등극한 오징어도 제법 잡히는 모양이다. 한때 마리당 2만 원이 넘던 횟감용 활오징어 가격도 마리당 5,000~1만 원 수준으로 돌아왔다. 다들 소식을 들었나, 강원 대표 어항 주문진은 평일 낮에도 양손 무겁게 돌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오징어에 제철 동해 활어회 한 접시면 올겨울도 풍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