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화경] ‘구리 박사’ 은퇴설

2026-01-14 (수) 12:00:00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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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토머스 에디슨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발전소를 가동하면서부터 구리는 현대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소재가 됐다. 구리의 전기 전도성에 일찌감치 주목한 에디슨은 약 2만 4400m의 구리 전선을 매설해 맨해튼에 전기 공급을 시작했고 전화기·모터·발전기 등 거의 모든 전기 발명품에도 구리를 사용했다. 전력 시스템 보급과 함께 1911년 세계 구리 생산량이 100만 톤을 돌파하자 구리 산업계 대표들이 구리 수요 급증에 기여한 에디슨에게 485파운드(약 220㎏)짜리 구리 덩어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 뒤로 전기 인프라부터 건설·제조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된 구리는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 명성을 쌓았다. 경기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구리는 언젠가부터 시장에서 ‘구리 박사(Dr.copper)’로 불리게 됐다. 1929년 대공황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구리 가격은 위기의 전조가 됐다

■이달 5일 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 구리 가격이 사상 최초로 톤당 1만 300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이 44%에 달하면서 시장에서는 ‘붉은 금’이라는 새 별명까지 생겼다. 글로벌 경기가 주춤한 와중에도 가격이 치솟는 것은 인공지능(AI)시대의 전력망 인프라 수요 폭증,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시스템 확산, 각국의 국방 예산 증가로 구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AI시대를 맞아 세계 구리 수요가 지난해 2800만 톤에서 2040년에는 4200만 톤으로 급증하고 1000만 톤의 구리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와 무관한 구리값 고공 행진이 이어지면서 ‘구리 박사’의 예측력은 빛이 바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미 2023년에 “구리 박사가 은퇴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사’ 타이틀 없이도 구리의 위상은 더없이 커졌다. 이제 구리는 경기 지표 대신 에너지와 산업 대전환을 이끄는 전략 자산이라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구리 정광(원석)을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는 부담스러운 소식이다.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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