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에스터 라우든 카운티 공립학교 전직 교사 애쉬번, VA
꿈과 낭만, 노력과 젊음이 수놓아졌던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을 회고할 때면 여러모로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고마운 분들이 많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친 어머니처럼 나를 아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Lilian Robertson(릴리안 로버트슨) 여사를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로버트슨 여사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부유한 크리스챤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나 명문 버지니아 대학인 Longwood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뜻한바 있어 독신으로 일생을 육영사업과 사회사업에 온 정성과 심혈을 쏟으신 연로 교육자이셨다.
이분을 처음 알게된 동기는 그 당시 재학중이던 올드 도미니온 대학교의 여학생 처장으로부터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고서 였는데 여사님의 첫 인상은 곱게 나이드신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이셨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양서들이 즐비하게 꽂혀있는 여사님의 서재를 방문하게 되었고 나의 대학원 연구 과정과 내 개인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며 보살펴 주시던 여사님께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엔 타국에서 유학온 크리스챤 여학생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성경공부를 지도하시곤 하였는데 어찌나 쉽고 재미있게 지도하시는지 한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나의 권유에 못이겨 자의반 타의반으로 따라온 일본인 친구까지도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될만큼 여사님의 해박한 성경지식과 한사람 한사람의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열정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휴일엔 찾아갈 가족이 없는 외로운 학생들을 크고 아름다운 자기 집에 초대하여 구운 칠면조 고기, 햄, 야채요리, 옘 케세롤, 메쉬드 포테토, 호박 파이, 피칸 파이 등등 풍성하게 차린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즐기게 해주시고 우리들이 학생 아파트나 기숙사로 돌아갈 땐 어김없이 남은 음식들을 골고루 싸주시곤 했다.
많은 유학생들중 유독 나를 아끼시고 사랑하셨던 여사님은 크리스마스때마다 나를 자기집에 초대하여 2주일간 화사한 벽지로 예쁘게 꾸며진 게스트 룸에서 기거하게 하시며 아침마다 잠보인 나에게 조그만 유리 종을 딸랑 딸랑치시며 깨우시고 “sleepyhead (잠꾸러기), 일어나서 아침 먹어라.” 하시던 그 모습이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엔 떠오른다.
어느해 목요일 오후 나는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다 부주의로 지갑을 분실하고 성경공부 시간이 되어 우울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여사님 댁에 당도하니 왜 안색이 좋지 않으냐고 물으셨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성경공부 끝난후 자기의 서재에 잠깐 들렸다 가라고 하셨다. 성경공부가 끝난후 여사님의 서재에 들렀더니 서랍에서 자기가 쓰시던 빨간 지갑을 주시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 지갑을 열어보니 조그만 용지에 “역경중에도 실망하지말고 더욱더 분발하기 바라며 나의 사랑의 선물을 동봉함” 이란 내용과 함께 50불 현금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도는 고마움을 느꼈으며 말로만이 아닌 직접 사랑을 실천하는 참 기독교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버님으로 부터 물려받으신 재산이 많았지만 늘 검소하게 살아가시는 여사님의 생활을 잘 아는 나였기에 여사님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관용심에 새삼 머리가 숙여졌다. 그 후론 나도 나중에 여사님처럼 민족을 초월하여 예수님의 참 사랑을 실천하리라 기도하곤 했었다
1970년 4월 30일 같은 대학에서 연구중이었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과 결혼할 때 진달래꽃이 화창한 자기집 정원에서 조촐한 정원 파티를 열어 주시고는 예수님을 새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시며 선물로 주신 조그만 금빛 십자가는 우리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때마다 맨처음 벽에 걸어놓고 기도드리며 귀히 여기는 우리집의 가보중의 하나이다.
또한, 내가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을 때, 그녀는 83세의 고령에도 왕복 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우리 대학 도시까지 와서 나를 축하해 주시고, 초록색 가죽 표지로 된 신구약 성경(리빙 바이블)을 선물로 주셨다. 그때 그 친절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벌써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나 되었으니 세월의 덧없음을 새삼 느끼게된다.
내가 공부를 끝내고 학교 선생이 된 후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명절이지만 고향에 못가는 외로운 외국 학생들을 우리집에 초대하여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마음껏 즐기게했고 가르치던 학교에서 외국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문화 교류를 할 때면 인솔 교사들을 우리집에 묵게하곤 해서인지 지금까지도 나한테 어머니라고 부르는 외국 학생들이 꽤 많으며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들로 부터 카드가 많이 날아온다. 인솔교사들하고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깊은 우정을 지속하여 서로 방문하면서 옛날을 회상하고 좋은 시간을 갖곤한다. 이런 사랑과 배려를 로버트슨 여사님 한테서 배웠기 때문에….
그의 모든 재산을 생전에 섬기시던 교회와 모교에 장학금으로 남기신다는 유서를 남기시고 고요히 우리들의 본향으로 떠나신 여사님의 온화하신 음성과 다정하신 모습이 그리워질때면 여사님의 사진과 함께 십자가와 성경 그리고 지금은 퇴색하고 낡은 그 빨간 지갑을 꺼내보며 여사님의 사랑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