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아르포스 폭포- 갈라져 흐르는 푸른 물길.
아이슬란드는 불과 얼음이 맞부딪쳐 빚은 거대한 실험실이다. 용암은 땅을 갈라 초현실의 풍경을 만들었고, 빙하는 바위를 깎아 호수와 폭포를 남겼다. 남한만 한 섬에 사는 이는 39만 남짓. 하지만 자연의 서사는 대륙처럼 웅장하다.
수도 레이캬비크는 이름 그대로 ‘연기가 나는 만’에서 태어났다. 온천의 수증기 사이로 세워진 도시가 잉골프 아르나르손의 오두막에서 시작해 오늘은 유리 큐브의 하르파 콘서트홀과 어선, 고래워칭 보트가 어우러진 현대의 항구가 된다.
군대는 없지만 음악과 예술로 단단한 도시. 주상절리를 닮은 할그림스키르캬는 자연을 건축으로 번역해 냈고, 종탑에 오르면 바다와 설산, 낮은 지붕들이 모인 도시의 숨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박물관에는 이 땅의 뿌리가 담긴다. 거대한 폭포 앞 무지개 위에 선 사람의 사진, 그리고 초기 아이슬란드어 성경 인쇄본이 나란히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의 예술은 자연 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란다. 빛과 바람, 겨울의 고독이 작품의 바탕이 된다.
교회 언덕 아래 골목으로 내려오면 작은 식당들이 따뜻한 조명을 켠다. 평점 4.8의 ‘올드 아이슬란드’ 식당 테이블에는 양고기와 소고기, 두 가지 대구 요리가 차례로 올랐다. 한 잔의 화이트 와인이 바다의 짠맛과 들판의 구수함을 부드럽게 묶는다. 높은 물가였지만, 맛과 온기, 함께한 시간이 한 끼를 여행의 한 장면으로 바꿔 놓았다.
도시를 떠나 골든 서클로 들어서면 아이슬란드의 심장이 뛴다. 싱벨리르(Þingvellir) 국립공원은 세계 최초의 의회가 열린 들판이자,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판이 갈라지는 현장이다. 협곡을 걷다 보면 인간의 역사가 대자연의 시간 앞에서 얼마나 작은지 절감한다. 몇 분마다 물기둥을 뿜어 올리는 간헐천을 지나면, 마침내 굴포스(Gullfoss)가 나타난다. 황금빛 물줄기가 두 번 꺾여 떨어지는 장면 앞에서 사람은 말없이 선다. 수력발전 계획에 맞서 폭포를 지켜낸 시그리두 토마스도티르의 말. “나는 내 친구를 팔지 않는다.” 물안개처럼 가볍지만, 바위처럼 무거운 신념이었다.
아이슬란드의 물은 장엄함만 있는 건 아니다. 브루아르포스(Bruarfoss)는 굉음을 버리고 색을 택했다. 갈라진 푸른 물결이 바위 위를 부드럽게 흐르며, 물도 카펫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케리드 분화구는 붉은 화산암 위에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었다. 불과 물이 잠시 화해한 풍경. 자연의 충돌도 시간 앞에서는 조화로 수렴된다는 걸 색의 대비가 말해 준다.
블루 라군으로 가면 용암지대의 검은 땅 위로 옥빛 온천이 피어오른다. 수증기는 사물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고, 실리카 머드를 바른 여행자는 잠시 다른 별의 방문객이 된다. 물은 몸의 피로를 씻고, 풍경은 마음의 거친 부분을 매만진다. 불과 얼음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법을, 이 온천은 물의 언어로 가르쳐 준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을 듣는 일이었고, 빛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폭포 앞에서,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작은 레스토랑에서조차 같은 깨달음에 닿았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고도 소중한가.” 아이슬란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바람으로, 파도로, 그리고 한 끼 식사로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그 속삭임을 따라 잠시 세상 끝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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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