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는 누가 조금만 도와줘도 큰 힘이 된다고들 한다. 막 넘어진 사람도 누군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서면 몸을 추슬러 마침내 달릴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조금만 도와주는 일’을 거의 10년째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있다. 여성이 여성을 돕는 공동체 AW(Accompany Worldwide)의 30여명 회원들, 오갈 데 없는 싱글 맘과 자녀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고 따뜻한 멘토링으로 삶을 재건시키는 ‘친정언니들’이다.
싱글 맘(한부모) 가정은 단어의 뉘앙스만큼이나 춥고 외롭고 가난하며 위태롭다. 대부분 가정폭력이 있었고, 이혼소송과 양육권 분쟁으로 지칠대로 지쳤으며,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들 돌보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엄마들, 그리고 많은 경우 한국서 사기결혼으로 미국에 온 서류미비자들이어서 요즘처럼 ICE의 단속이 무서운 세상에서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꽁꽁 숨어 살아야한다. 여기에 건강이 나쁘거나 자녀문제까지 겹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
AW(대표 이경미ㆍ이사장 이수인)는 이런 여성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2016년 성경공부로 시작한 단체다. 2018년 처음 셸터를 열고 7명을 수용했으나 팬데믹 때문에 문을 닫았고, 2021년부터 주택보조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매년 10명 내외의 지원자를 선정하여 1년 동안 일인당 9,000달러의 주거비를 지원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의 가정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 AW는 가족친지가 없고 마음 붙일 데 없는 여성들에게 보호막이요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중요한 공동체의 역할을 한다.
2년 전 이 단체 이야기를 칼럼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많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딱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온다.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까 싶도록 막막한 스토리들, 이를테면 이런 사례들이다.
J는 5년 전 남편이 마약밀매로 수감됐다가 출소 후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또 가정폭력을 저지르고 집을 나갔다.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다 최근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양쪽 손목에도 수술 받은 그는 일자리를 잃어 우버와 택시 운전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Y는 8년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정신 및 육체적 폭력을 당하고 살다가 남편이 아이까지 학대하자 뛰쳐나와 6세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다. 이혼이 끝나도 남편의 빚이 많아서 절반을 떠맡아야하는 상황,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되었으며, Y는 6개월째 하혈을 계속하고 있다.
불우한 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6년 만에 셸터에서 스탠포드 대학까지 간 인간승리의 이야기도 있다.
E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바람이 났고, 계속되는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AW의 첫 셸터에 거주했던 여성이다. 이후 웨이트리스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던 그는 LACC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기 시작, 지난봄 버클리, 스탠포드, USC, UCLA에 원서를 내 모두 합격했다. 이중 가장 많은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스탠포드를 택한 그는 애들과 함께 올라가 지금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용기술을 배워 오픈한 비즈니스가 예약이 밀릴 정도 잘 돼서 테슬라 타고 다니는 여성도 있고, AW 덕분에 살았다며 매달 번 돈을 조금씩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AW가 지금까지 지원한 여성은 대략 50명. 이 가운데 자립에 성공한 사람이 얼추 80%나 된다. 이 단체를 세운 이경미 대표는 “누가 도와주니 살 희망이 생긴다고, 어떻게든 자립하려고 악착같이 애쓰며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른다.”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멘토 프로그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AW는 따뜻한 추수감사절 디너파티를 새장로교회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는 29명의 싱글 맘 가족과 수십명의 자원봉사자 및 회원들, 그리고 이 단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라이온스 클럽의 멤버들이 참석하여 훈훈한 사랑과 음식과 선물을 나누었다. 라이온스 클럽은 12명의 자녀에게 1,000달러씩의 장학금과 마켓상품권을 전달했고, 토랜스참사랑교회 여선교회가 지원한 격려금이 모든 가정에 주어졌다.
이날 김도일 목사(세계등대교회 담임)의 ‘긍휼’에 대한 설교가 마음에 남는다.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돌보아준다는 뜻이지만 “당연한 것이 아닌, 하지 않아도 될 선행과 자비를 베푸는 마음”이라고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굳이 도울 필요가 없음에도 가던 길을 멈추고 자비를 베푸는 일. 그런 긍휼의 마음이 없었다면 AW라는 아름다운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이 추수감사절이다. 감사는 나눌 때 훨씬 더 커진다. 작은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 ‘조금만 도와주는 일’이 더 커지기를 바란다.
www.accompanyw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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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