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2초는 어떤 시간일까’

2025-10-21 (화) 07:50:32 김창만/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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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는 어떤 시간일까. 제2차 대전 중 폴란드 땅에서는 한밤중에 갑자기 도와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유대인이 종종 있었다. 이때 집주인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웃에 대한 인도적 감정과 나치에 의해 발각될 경우 온 가족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상황 인식 사이에서 동요하던 주인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2초는 바로 그 사람이 구조를 결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의 최대치다.

이 찰나적 행동이 개인이나 가족, 지역 사회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찰나의 연속을 살아가는 인생은 영겁을 지향한다.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면, 거듭된 순간의 유혹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최호근의 “시간 감각과 역사의식‘ 중에서)


휘하의 3천명 군사를 이끌고 하루 종일 다윗을 쫓던 사울 왕은 지치고 기진했다. 사울 왕은 잠시 용변을 보기위해 진중(陣中)에서 벗어나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겉옷으로 발을 가린 채 은둔하고 있는 사울을 지켜보던 다윗은 은밀히 다가서서 그의 옷자락을 베었다.

하지만 다윗은 숨소리마저 제어하고 홀연 그 자리에 멈췄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윗의 이 특별한 행위의 순간은 ‘2초처럼’ 짧았으나 자세는 엄숙했다. 다윗은 준엄하게 자신을 절제했다. 살인을 피했다.

망하고 흥하는 것과 성(聖)과 속(俗)이 순간에 좌우될 때가 많다. 비범한 리더는 진실의 향기가 묻어나는 ‘순간의 공감’을 일으켜 사람의 품격을 도약시키는데 탁월하고 민감하다.

탁월한 리더는 악연의 만남에서 파생되는 순간조차 무의미하게 놓치지 않는다.
랍비 유다 하나시(Judah ha-Nasi)는 말했다. “긴 일생에 걸쳐 영원을 얻는 사람이 있고, 짧은 순간을 하나님께 드려서 영원을 얻는 사람도 있다. 선한 한 순간이 일생과 맞먹을 수 있고, 여러 해에 걸쳐 방황하며 잃어버린 것을 짧은 순간에 회복할 수도 있다.

진실이 묻어나는 순간의 힘은 이처럼 고귀하다.” 이성과 합리성은 머리를 따라 움직이지만 감성과 감동은 마음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를 의외의 도약으로 이끌어 올린다. 진실이 묻어나는 그 순간에 굳게 닫힌 마음을 활짝 열었던 다윗은 ‘순간의 힘’을 잘 알았던 위인이었다.

로버트 레슬리는 자신의 책 ‘예수와 로고테라피’에서 말했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을 거부한 것과는 달리 이 여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여인의 영혼의 친구로 다가가셨고, 그의 인간적인 요구를 더 넓은 공감의 차원으로 연결시켜 주셨다. 세상은 그 여인을 원(圓) 밖으로 내몰았지만 예수는 그 여인이 원 안으로 들어올 있도록 더 큰 원을 그려 놓으셨다.”

당신은 리더인가. 예수처럼 누군가에게 큰 원을 그려주는 공감의 사람이 되라. 2초의 짧은 시간이라도 ‘순간의 힘’을 놓치지 말라. 운명을 바꾸는 도약의 기회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당신 바로 곁에 있다. 다만 도약을 일으킬 ‘2초의 힘’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순간의 힘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있으라.

실존적 공허와 무의미로 고통당하던 톨스토이는 하나님을 믿고 난 뒤 이렇게 고백했다. “신앙이 무엇인가, 신앙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전혀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신앙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깊은 유대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공감의 책임을 깨달았다.” 아, 2초는 얼마나 고귀한가.

<김창만/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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