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지혜와 교활함의 시대, 미국 정치의 거울

2025-10-21 (화) 07:46:08 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크게 작게
“지혜로운 자는 난폭하지 않고 전체를 위하여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교활한 자는 잔인하며 문제의 해결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에 둔다.” 이 문장은 지금의 시대를 꿰뚫는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는 지혜로운 자의 침묵과 교활한 자의 언변이 세상을 흔드는 혼돈의 시기에 서 있는것 같다.

오늘의 미국 정치는 설득보다 선동이 앞서고, 공익보다 사익이 먼저다.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는 전략이 동원된다.

최근 연방정부 예산안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양당의 대치로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자 연방 공무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정부의 여러 기능이 멈췄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느 쪽이 더 강경했는가가 아니라, 어느 쪽의 예산안이 더 공익적이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누가 더 크게 외쳤는가보다, 누가 진정 국민의 삶을 보호하려 했는가가 핵심이다.

역사는 이런 혼란을 수없이 반복했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도덕과 예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지만, 권모술수의 시대에는 비웃음거리였다. 그러나 폭력으로 세운 진(秦)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한(漢)의 유방은 유연한 덕으로 나라를 안정시켰다.

로마 말기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칼이 아닌 이성으로 제국의 균형을 지키려 했지만, 교활한 권신들과 탐욕스러운 장군들이 제국을 무너뜨렸다.

조선의 정조 역시 붕당정치의 분열 속에서 탕평으로 개혁을 추진했지만, 개인의 욕심과 사당의 이익을 추구한 무리들이 그 불씨를 꺼뜨렸다. 결국 조선은 자기 개혁의 기회를 놓쳤고, 세도정치의 어둠 속에서 쇠락했다.

20세기에도 독재자들은 대중의 분노를 조작하고 공포로 통치했지만, 그 끝은 파멸이었다. 반대로 전쟁 뒤의 유럽을 재건한 지도자들은 협력과 신뢰를 선택했고, 그 덕분에 민주주의가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지금의 미국이 어지러운 이유는 지혜로운 자들이 침묵하거나 물러나기를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법을 무시하고 자기 아집을 부리는 자가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포장되고, 타인을 짓밟는 자가 ‘유능한 인물’로 떠받들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폭풍은 언제나 지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혜로운 자들이 다시 나서야 한다. 증오 대신 이해를, 불신 대신 공감을, 분열 대신 공개 토론과 정치 사회적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토론하는 숙의(熟議)를 선택해야 한다.


언론은 그 중심에 서야 한다. 교활한 자들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지 말고, 그 말 속에 숨은 의도와 권력의 냄새를 밝혀야 한다. 진실을 비추는 빛이야말로 사회의 마지막 균형추다.

이 혼란을 건너는 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왔다. 그것은 폭력이 아닌 지혜, 증오가 아닌 이해, 사익이 아닌 공익이었다. 교활한 자들이 잠시 세상을 휘두를 수는 있어도, 결국 세상을 일으키는 것은 지혜로운 자들의 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즉 유권자의 눈이 지혜로워질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올바른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고, 공익을 위한 언론을 지지하며, 각자가 속한 공동체를 사려 깊게 다스리는 시민의 힘. 그것이 바로 교활함의 시대를 넘어설 유일한 해답이다.

결국 이 시대의 문제는 정치의 기술이 아니라 지혜의 부재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