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일사 일언 (一事 一言)

2025-09-17 (수) 07:45:49 오해영/뉴욕평통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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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폭(廣幅)은 ‘매우 넓은 폭’을 의미하며 ‘광폭(狂暴)’은 매우 거칠고 사납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광폭’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므로 여기에서 필자는 광폭(廣幅)을 사용한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속전속결로 글자 그대로 광폭(廣幅)행보로 야와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 여당은 내란, 김건희, 채상병 특검 등 3대 특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를 하루만에 뒤집고 특검수사 기간 연장 등을 단독 처리했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위법 사항에 대한 조사는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며 인권이 존중돼야 함은 진리(眞理)다. 그러나 행정가나 정치가는 그릇된 정책을 신중하게 수정하고 올바른 정책(一事)에 대하여 한입으로 일관(一言)해야 한다.


즉 일사 일언(一事 一言)이다 지금 특검법에 따라 수사 기간이 절반 이상이 남아 있는데 여당은 수사 기간을 연장하고 수사 검사를 확충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구나 내란 특검이 요청한 자수자와 신고자에게 형 감면 공소 보류에 대해 여당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특검의 독립성이 의심받을 수도 있다.

법률은 그 내용이 헌법을 위배해서는 안되고 정의롭고 정당해야만 한다. 그런데 인간이 정의롭지 못하면 정의로운 법도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현 정권은 과거사를 고찰해 보면서 야당과의 협치(協治)를 이루어야 한다.

지난주 한국일보 사설에서 ‘밤사이 특검법 합의 일방 파기 선 넘은 여당 무책임’ 이라고 지적 했듯이 집권당으로서 국민의 민심을 이반 시키고 정치 사회적으로 정권에 누가 되고 법제화에 표류가 없는지 끊임없이 자문해봐야 한다.

여당은 내란 척결 등을 앞세우면서 3개 특검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수사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수사 과욕의 문제다. 수사 기간을 연장하고 수사 인력을 보강하는 이른바 더 센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여야가 합의한 수정안이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번복되었다.

야당은 당 내외 투쟁으로 ‘독재정권’ ‘정치보복’ ‘불법특검법 분쇄’ 로 맞섰다. 격양된 野의 장외 투쟁으로 요즘 한국 정치권은 사사건건 격돌하면서 ‘말’의 전쟁으로 여야가 강 대 강 대결구도가 수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의 비호감도가 33%로 하강했다. 저질 ‘말’싸음 때문이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고 수렵시대에는 화가 나면 돌을 던젔고, 로마 시대에는 몹시 화가나면 칼을 들었으며,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는 총을 뽑았으나 현대에서는 화가 나면 ‘말’ 폭탄을 던진다. 예나 지금이나 ‘말’에 탐하는 마음이 많으면 재앙이 생긴다.

허물은 잘난 체하고 남을 하찮게 하면 그것이 바로 허물이 되어 ‘말’로 되돌아온다.
이조 왕조때 일이다. 어느날 왕이 광대 두 명을 불렀다. 한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악(惡)한 것을 찾아오라 명하고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善)한 것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두 광대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몇년 후 왕 앞에 나타나 찾아온 것을 내놓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제시한 것은 ‘혀’ 였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가 않다. ‘말’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말싸움은 이제 그만 두라는 뜻이다. 말싸움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감정이 사람도 해친다.

고사에서 나오는 ‘조고각하’(照顧脚下)란 중국 송나라 법연선사의 일화에서 나온 얘기다. 자신의 발아래를 살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겸손과 낮아짐을 상징한다.

제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자신의 신발을 신고 벗으려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것처럼 지난번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미국 순방길에 비행기 탑승 직전 환송나온 인사들에게 두손 모아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것은 전직 대통령에게서는 볼수 없던 어짐과 겸허함의 극치였다.

다소 가식적이란 평가를 들어도 좋으니 최대한 겸손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말이다.

<오해영/뉴욕평통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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