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르포]“금방갈게”…근로자들, 이륙전 휴대폰 충전해 가족통화부터

2025-09-11 (목) 09: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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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금시설서 6시간 달려 전세기 탑승…일부는 탑승전 담배 ‘한모금’

▶ 일주일간 박탈당했던 ‘자유’ 만끽…”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이제 (전세기) 탔어. 금방 갈게." "나는 괜찮아. 이제 간다."

11일(현지시간) 오전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 내 화물 청사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 전세기 안.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됐다 일주일 만에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들이 전세기 이륙을 기다리며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휴대폰을 충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구금시설에서 풀려난 뒤 휴대폰을 비롯한 소지품을 돌려받은 근로자들은 전세기에 탑승하자마자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준비한 충전 케이블로 한동안 전원이 꺼져 있던 휴대폰을 충전한 뒤 그리운 가족들과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세기 탑승객은 연합뉴스에 "다들 가족에게 전화하기 바쁜 모습"이라며 "일부는 가족과 통화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비교적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8시30분께 새벽 어스름을 헤치고 달려온 일반 전세 버스 8대가 순차적으로 애틀랜타 공항 화물 청사에 들어섰다.

지난 4일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당국의 단속으로 체포·구금됐다 풀려난 한국인 근로자들이 탄 버스다.

포크스턴 구금시설에서 애틀랜타 공항까지의 거리는 약 430㎞로, 이민세관단속국(ICE) 차량과 동선으로는 통상 8시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은 우리 기업 측이 준비한 버스로 이동한 덕분에 석방된 지 6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구금시설에 억류된 지 7일 만이자, 전날 '미국 측 사정'으로 석방·귀국 지연 통보를 받은 지 하루 만이다.

통상 공항 출국장에서 체크인과 보안 심사 등을 거치는 일반 탑승객과 달리 이들은 별도의 신분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권을 받은 뒤 공항 도착 약 2시간 만에 전세기에 탑승했다.


전세기 탑승을 기다리던 일부 근로자는 버스에서 내려 그간 못했던 흡연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편안한 복장으로 휴식을 취하던 이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건강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전세기가 준비된 대한항공 화물사무소는 근로자들이 버스를 타고 속속 도착하면서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대한항공과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근로자들을 챙기면서 막바지 이륙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전 9시50분께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화물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를 비롯한 정부·기업 관계자들도 이들의 귀국길에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 전세기에 탑승했다.

박 차관은 전세기 앞에서 탑승객을 맞이하며 격려와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차관은 전세기 탑승에 앞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도록 여러 분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동안 직원분들께서 잘 견디고, 잘 버텨주셔서 감사하다"며 "그동안 많이 걱정했고 직원분들 가족들도 (석방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하는 생각에, 잘 해결돼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출국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며 이들이 탑승한 전세기는 당초 계획보다 32분 이른 오전 11시38분 애틀랜타 공항을 이륙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한국시간 12일 오후 3시11분께 도착할 예정이다.

한국인 300여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구금된 이번 사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이었기에 미국 현지 언론의 관심도 컸다.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공항 주차장 옥상에서는 방송카메라와 사진기를 든 외신 기자 여럿이 전세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남성 307명, 여성 10명)으로, 이 가운데 1명은 '자진귀국'을 선택하지 않고 잔류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외국 국적자 14명(중국 10명, 일본 3명, 인도네시아 1명)을 포함한 330명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번 사태로 임직원 47명과 협력사 소속 250여명이 구금됐던 LG에너지솔루션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후속 절차에 만전을 기하고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건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지 시공을 맡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전세기 비용을 분담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금됐던 임직원과 협력사 소속 희망자 전원에게 가족을 픽업해 공항으로 이동하고 자택으로 복귀하기 위한 차량을 개별 제공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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