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비바람이 몰아쳤다. 해변의 키 큰 야자수가 속절없이 마구 흔들렸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는 남 태평양 섬나라에 흔히 있는 스콜(squall)현상이다.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몇 분 동안 지속된후 단시간내에 퍼붓는 늦은 오후의 소낙비가 내리는 현상이다. 자고 일어나니 바다 넘어 산위에서 구름속을 헤치고 나온 붉은해가 아침인사를 한다. 오늘은 3시간 정도 배를 타고 티부아섬으로 가서 해양스포츠를 할 계획인데 천만다행이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버스로 한시간을 나와 디나라우선착장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과 바다사이에 50여명을 태운 작은 배에는 우리 일행외에도 다른 여행객들도 있다. 승우원들은 피지 원주민의 한약 같이 쓰디쓴 차와 다과를 차려놓았다. 이들의 기타 치며 부르는 노래와 춤으로 검은 구름은 물러났다. 전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다.
‘불라(bula) 티부아섬(Tivua Island)’ 우리를 환영한다는 팻말이 펄럭이는 작은 섬에 내렸다. 발바닥이 따끈한 모래밭을 거닐며 바비큐, 샐러드, 맥주, 와인 등 을 먹고 마시며 야자수 그늘 아래의 긴 의자에 앉아서 물망을 하거나 낮잠을 청하기도한다. 바닷속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바다에서 스노클링하고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는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가서 보는 글라스 바름(glass bottom)으로 아름다운 바닷속 생물들과 눈 맞춤하며 한 나절을 즐겁게 보냈다. 오후3시쯤 되어서 호텔로 돌아오는 배에올랐다.
나른하게 졸음이 쏫아질 무렵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몇명의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 사람도 비바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나도 대책없이 쏫아지는 비를 맞으며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내 가까이 앉은 처녀가 자기 큰 수건을 함께 덮자며 내손을 잡아당긴다. 둘이 엄마와 딸처럼 딱 붙어 앉아서 수건 양쪽 끝을 잡고 우리 머리와 어께를 둘러싸니 둘의 체온이 더해져서 덜 춥고 비에 덜 젖는 것 같다. 고마운 아가씨다. 그녀와 함께온 세 친구들은 한 우산을 쓰고 수건을 두르고 앉아서도 비에 젖어 떨고있다.
이들은 호주로 유학온 중국학생들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 작은배 안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2시간 이상 견뎌내야 한다. 컴퓨터공학을 공부한다는 눈이 크고 하얀얼굴에 노란머리의 20살된 미스 디와 나는 푹 젖은 수건을 꽉 짜내며 서로 덮어주며 체온으로 덥혀주었다.
배 안의 다른 승객들이 불안해하며 추위에 벌벌떨고 있는 동안에 생쥐처럼 젖은 우리는 수건안에서 딱 붙어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감싸주며 견디다보니 배에서 내릴 때 쯤 비가 그쳤다. 우리를 모녀간으로 착각한 승무원이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며 “너무 아름답습니다.”고 한다.
사랑은 고통을 이기게하고, 서로 힘을 합치면 둘이 하나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체험하게 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세상을 산다. 세계 곳곳에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럴때 미스 디 처럼 주위사람을 돌보아 손을 이끌어 고통을 나누어 진다면 윈윈하는 세상이 되지않을까?
나는 폭풍우 몰아치는 태평양에서 처음 만난 중국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
김영화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