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사랑의 불시착

2025-07-29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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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덴에 작은 손님이 왔다. 우리를 찾아온 손님이니 반가우면서도 걱정된다. 캘리포니아 겨울 벌새가 덴 천장에 메달아 놓은 랜턴 모서리에 앉았다 날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무슨 일로 저리도 안절부절일까? 밖에서 멋진 렌턴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자기 먹이통으로 착각했나? 원래 사랑은 한쪽 눈을 감았을 때 시작한다지만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벌새는 두 눈을 뜨고 불시착했다.

이른 봄부터 우리 집 주위에 안내 벌새(캘리포니아 겨울 벌새)가 많이 날아다닌다. 앞마당에 핀 장미꽃에 가늘고 긴 주둥이을 맞추고, 내 서재 바로 앞에 있는 가시선인장 꽃술에 작은 날개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날며 꿀을 따곤한다. 뒷뜰에 핀 제몸의 몇배나 되는 큰 호박꽃에도 편하게 앉지 않고 공중에서 날개 짓을 하며 들락날락한다. 내 중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벌새는 앙증맞게 작지만 힘이세서 멀리난다고 한다. 일 초에 53번이나 움직인다는 빠른 날개짓이 힘겨워보여서 애처롭다.

나는 덴의 양쪽 문을 활짝 열고 이 가녀린 새가 무사히 밖으로 나가길 지켜보고 있었다. 서뿔리 돕는다고 빗자루로 몰아내다가 다칠 수 있기때문이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마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장 루슬로의 ‘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시에서 말 했듯이 돕겠다고 만지면 꽃잎처럼 여린 달팽이 껍질이 부서지기 쉽다. 그 자신이 스스로 회복해서 일어날 때 까지 기다려주어야 하듯이 이 작은 새도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도록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지난 여름에도 허밍버드 한마리가 덴에 들어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불쌍한 새를 살려 보겠다고 안으로 들여와 어디 다친데는 없는지? 배가 고픈지? 내 온갖 전문 상식을 다해 관찰했다. 물을 마시게 하였지만 한 나절이 지나도 움직이지도 않고 차도가 없어 아는 수의사에게 전화하여 의논했다. 꿀물을 먹여보라고 해서 꿀물을 억지로 주둥이에 데주었지만 조금 맛 보는듯 하고 누워버렸다. 밤 늦도록 그 옆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나길 기다렸지만 결국 죽어 뒷마당에 묻어주었다. 무슨 연유로 내 집에 들어와서 죽었을까? 동네 고양이에게 물렸는지 모르지만 상처는 없다. 나이가 많고 힘이 다해서 편히 죽을 곳을 찾다가 들어왔나? 아무리 미물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 진다.

이번에 우리 덴에 들어온 벌새는 우리가 애태우며 지켜 보는 동안 랜턴 모서리에 수 없이 앉았다 날다 하면서 문을 찾아 날아갔다. 벌새는 빠른 날갯짓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아 매 10분 마다 먹어야 한다는데 ‘ 저거 탈진하면 어떻하지? 꿀물을 타다 놔 줄까? ‘ 고 그 사이 우리의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벌새는 랜턴이 자기 생각대로 먹이통인 줄 알고 영영 밖으로 나가지 못 할 것 같아 마음을 독하게 먹고 참고 기다려 주었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삶! 벌새 자신도 고생은 했지만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 살아 난 기쁨이 클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방황하던 벌새 한 마리가 제 길을 찾아가도룩 기다려 준 하루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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