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의 생산부터 사용·유통·폐기…
▶ 한국 온실가스 16% 먹는 일서 나와
▶ CO₂34배 독한 메탄, 쌀 재배서 발생
▶ ‘저탄소 농법’땐 탄소 배출 63%↓
▶ 지역 식재료 구하고 잔반 줄이기
▶ 비건 간편식 이용도 환경에 도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0%, 한국은 약 16%(한국농촌경제연구원)가 ‘먹는 일’에서 발생합니다. 식품 생산부터 유통, 사용, 폐기를 포함해서요.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에서도 식습관과 관련, ‘저탄소 기후행동’ 실천 방법을 앞서 두 차례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채식’을 일주일 동안 기자가 직접 도전해 본 이야기를 전해드렸고요. 잔반 줄이기, 외식보다는 집밥 먹기 등 ‘1.5도 라이프스타일’ 권고에 기반한 방법들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기자도 먹는 일과 관련해서는 저탄소 실천 방법을 다 꿰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웬걸요. 지난달 16일 저녁 무렵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지구식탁 토크 콘서트’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비자의 식재료 선택부터 농산품의 생산 방식까지 제가 몰랐던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나의 선택에 따라서 탄소 배출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니. 평소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주제라 귀가 쫑긋 서기도 하고, ‘배운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기도 했죠. 그날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의 일부를 소개해 드릴게요.
국내 메탄 발생량 22%는 쌀 재배 과정서우리가 거의 매일 먹는 쌀도 온실가스 주요 배출원 중 하나인 것 알고 계셨나요? 저는 몰랐어요.
워낙 많은 뉴스나 매체에서 다루기 때문에, 소·돼지 등 육류는 사육 과정에서 메탄 발생량이 많고 사료로 쓰이는 곡류 생산에서도 탄소 배출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식물성 식단이나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닭·달걀 등으로 단백질 대체를 권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쌀밥, 김밥, 비빔밥, 볶음밥 등 한국인의 주식인 쌀 역시 재배 과정에서 메탄 발생량이 꽤 많다고 합니다. 메탄(CH4)은 지구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CO2)의 15~34배 강한 온실가스인데요. 벼는 보통 논에 물을 채워서 키우는데, 산소가 부족할 때 메탄을 뿜어내는 세균이 논에서 잘 번성한다고 해요. 한국은 전체 농경지 중 절반(53%)이 논이기 때문에, 국내 메탄 배출량의 약 22%가 벼 재배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쌀을 안 먹을 수는 없는데 어쩌나’ 싶었는데요. 이날 사회를 본 벨기에 출신 방송인이자 환경운동가 줄리안 퀸타르트가 ‘저탄소 쌀’을 소개했어요. “저탄소 농법에서는 논이 물에 항시 젖어있는 게 아니라 적셨다가 건조시켰다가 하며 재배해 기존 농법 대비 온실가스는 63%, 농업용수는 28% 정도 아낄 수 있다(논물 걸러대기 농법 기준)”고요.
농림축산식품부도 ‘저탄소 농법’을 장려하고자, 지난해부터 이렇게 벼를 재배하는 농부들을 일부 선정해 직불금(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정부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저탄소 농축산물’ 시장이 커지기 어렵겠죠. 5㎏ 쌀 포대를 기준으로 일반 쌀은 1만5,000원 안팎에서 시작해 종류에 따라 2만 원을 넘기도 하는데요. 농축산부의 ‘저탄소 인증’ 쌀은 2만 원부터 시작하니, 가격이 더 나가는 편이기는 합니다.
잔반 남기면 식재료 낭비에 메탄도 유발사실 저탄소·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식재료보다 비싼 경우가 많죠. 이날도 한 참석자가 실천 방법으로 ‘유기농을 애용한다’고 하자, 패널인 조선행 녹색소비자연대 위원장이 “유기농 채소·과일을 많이 사드신다고요? 부자시네요!”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 유기농업은 화학비료·농약을 쓰지 않거나 최소화하기 때문에, 이들 물질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아야만 기후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음식 낭비하지 않기, 식물성 식단 하기, 제철 식재료 쓰기, 지역 먹거리 애용하기(유통 과정에서도 많은 탄소가 배출되니까요), 텃밭 가꾸기 등 실천 방법은 많습니다. 식물성 원료만 쓰는 풀무원 ‘식물성 지구식단’ 등처럼 식품업계에서도 비건 간편식을 출시하는 추세고요. 이날 지구식탁 행사에서도 풀무원 제품을 활용한 비건 만두, 참치 느낌 나는 대체육을 올린 유부초밥 등이 제공됐는데 맛있더군요.
조선행 위원장은 또 ‘식품의 생산·가공·유통 과정을 공부하는 것’ 역시 기후변화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소비자이자 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그가 든 예시는 ‘깻잎’이었는데요. 그가 어느 여름철 깻잎 농가를 찾아서 보니 밤에도 비닐하우스 불이 환하게 켜있었다고 해요. 농부에게 이유를 묻자 “들깨는 8월 말 일조량이 줄어들면 이내 꽃을 피우는데, 꽃이 생기면 이파리(깻잎)가 억세지고 커지지 않는다”고 했대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깻잎이니 불을 늦게까지 켜서 아직 여름인 것처럼 들깨를 속이는 것이지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재배 기술이지만, 전기 등 에너지 투입량은 당연히 늘어나게 될 테고요.
그래서 ‘깻잎을 먹지 말자’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다만 이 일화를 듣고 나니, 그동안 무심코 두세 장씩 남겼던 쌈 채소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너무 쉽게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렇다 보니 역설적으로 식재료 하나하나의 귀중함은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고요.
음식물쓰레기는 식재료 낭비 자체도 문제지만, 부패 과정에서 메탄이 발생된다는 게 큰 문제예요. 유엔환경계획(UNEP) ‘음식물쓰레기 지수 보고서’(2024)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 정도가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한국인의 연평균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은 1인당 95㎏으로 세계 평균(79㎏)보다 많았습니다.
서보라미 기후솔루션 농업·식량 분야 연구원은 이날 행사를 찾은 60명이 하루 한 끼만 육류 기반 식단에서 식물성 식단으로 바꿔도 ‘서울숲 면적 10배에 달하는 숲이 1년 동안 흡수하는 탄소량’에 맞먹는 양을 감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채소 위주의 건강한 음식을 내 양껏 적당히, 잔반을 남기지 않고 잘 챙겨 먹는 일로도 지구를 바꿀 수 있구나 실감하는 한 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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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