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아래에서
2025-04-22 (화) 08:13:10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온 천지가 밝아졌다. 개나리가 노랗게 동네를 물들이더니 이젠 하얀 크랩애플나무들이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양쪽으로 늘어서서 운전하는 나를 반갑게 맞고 있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기분이다. 창문사이 로 흐르는 아침공기가 매우 신선하다. 아직은 약간 차게 느껴지는 바람타고 들어온 청아한 새 노래소리가 정신을 맑게 한다. 구름 한 점없는 파란 하늘을 향해 깊은 숨을 쉬며 대지의 봄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교회에 파킹을 하고 앞을 보니 언제 피었는지 커단 목련 나무가 핑크빛으로 활짝 웃고 있다. 친하게 지내는 장로님이 우릴 보시더니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갑작스런 제안을 하셨다. 얼떨결에 남편과 찍었는데 사진속의 우리도 목련처럼 웃고 있었다.
겨울 내내 근육통으로 아파했던 남편이 오랫만에 웃음을 찾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원래 착한 미미지를 안고 태어난다. 그러나 살면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의 악이 끼어 들면서 세상이 미워지기도 하고 헝크러진 형태로 자기 혐오와 우울증까지 생길 수 있다. 오늘 남편은 목사님의 설교도 열심히 듣고 찬송가도 눈을 반짝이며 부르고 있다. 그동안 얼었던 입이 봄과 함께 녹고 있었다. 자기혐오는 자신에 대한 가치기준을 높이 둔 사람들에게서 생긴다. 훌륭해야 마땅한 나, 사랑받아야 마땅한 나, 아프지 말아야 하는 나 등, 나와 현실의 나사이의 간극에서 자기 혐오는 생긴다. 세상에는 오로지 잘못된 점들만 보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셔널 지오그레픽 사진 작가인 드윗 존스(DeWitt Jones)처럼 자기 직업을 이용하여 인내를 갖고 늘상 보던 풍경이나 사물에 한 줄기 빛을 비추거나 그것들에서 시각을 바꾸면서 세상의 좋은 점들을 부각시켜 인간과 자연의 가장 평범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면 파릇파릇 솟아나는 잔디와 수줍고 여린 들꽃들의 기지개와 메마른 가지를 뚫고 나오는 어린 새싹들을 많이 보게 된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의 매서운 회오리 바람과 눈폭풍을 이겨내고 살아난 자연의 지혜와 힘에 경이로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가 비록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게 된다. 세월은 흘러도 인식의 재정비를 거치면서 시간을 자기 편으로 구부려놓고 보면 마치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모든 것을 지니고 태어난 것’ 처럼 세상 모든게 좋아보이고 감사하며 마음도 젊고 행복해진다. 설사 한 번도 경험 하지 못한 노년의 삶이 맞닥뜨려도 우리가 취하는 시각과 태도에 따라 삶의 색과 결은 달라지게 된다.
인생에 필요한 네가지 덕목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의 관심영역을 넓고 깊게 만드는 독서를 통해 진정한 인생의 진로를 개척하는 것, 둘째: 시간이 나는 대로 혼자 걸으며 사색하고 음미하며 지식을 지혜로 부화시키는 것, 셋째: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그들이 털어놓는 보석같은 진실을 듣는 것, 넷째: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때 많은 생각을 하고 정리된 생각을 분명하고 명료 하게 압축해서 의견을 밝히는 것… 인생의 밑걸음이 되는 덕목들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기 수양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올바르게 만들고 남을 받아들이는 힘을 준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봄에 애착이 간다. 얼었던 가지에서 싹이 돋고 봉우리가 맺히며 잎도 없이 진하고 옅은 핑크가 어우러진 화려하고 우아한 꽃을 피워내는 목련이 참 신기하고 예뻐서 자연의 섭리를 다시 생각한다. 외롭고 어두웠던 겨울을 강인하게 이겨내고 해맑게 웃고 있는 착한 모습 에서 희망이 솟는다. 새삼 살아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계절인가. 사방에 퍼진 봄향기가 꽃길을 만들고 있다. 우리 인생도 꽃길만 같으면 남에게 기쁨과 향기를주는 삶이 되어 더욱 착한 세상이 될텐데. 목련꽃 아래에서 봄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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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