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꼰대들의 전성시대

2025-04-17 (목) 12:00:00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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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신경통이 생겨 의사권고에 따라 매주 한 차례 물리치료를 받는다. 실상은 ‘물리고문’이다. 코디네이터 청년이 “아버님, 아버님”하며 자세를 잡아주고는 허리와 다리를 인정사정없이 짓누르고 잡아당긴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안 아프다면 이상한 거지요”라며 노인네 엄살로 치부한다. 20대 때 군대에서도 받지 않은 모진 기합이다.

지난해 손녀에게서 기발한 선물을 받았다. 셀폰으로 스트리밍해 저장한 수백 곡의 음악을 재생해내는 주먹만한 크기의 스피커다. 음질이 좋고, 말로 볼륨을 높여라, 줄여라 명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두어 번 사용했을 뿐이다. 여전히 재래식 전축의 육중한 스피커로 내가 LP에서 녹음한 CD만 듣는다. 수십년간 고집해오는 습관이다.

물리치료사나 손녀의 눈에는 내가 영락없는 꼰대로 비칠 터이다. 80대 노인들에 다반사인 좌골신경통을 고쳐달라고 제 발로 찾아와서 물리치료가 아프다며 딴 소리다. 팝송이건 클래식이건 취향에 맞는 곡을 원하는 대로 스트리밍해 순식간에 저장할 수 있는 첨단기기를 마다하고 전축 앞에 두 시간 이상 죽치고 앉아 CD 한 개를 구워낸다.


하지만 나만이 아니다. 요즘 세상은 가히 꼰대들 천지이다. 꼰대는 원래 영감태기, 늙다리, 노털, 할배 따위처럼 노인을 경멸하는 비속어였다. 중고생들 사이에선 꼰대가 선생님의 별칭이기도 했다. 자기 아버지를 ‘우리 집 꼰대’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최정상의 권력자들인 조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등도 꼰대 반열에 낀다.

그 꼰대의 개념이 확대됐다. 고령자, 특히 권위주의적, 과거 지향적, 시대변화에 뒤떨어지는 노인들만 일컫지 않는다. 잘난 체 하고, 어깃장 놓고, 지적질 하고, 파당 짓고, 다짜고짜 언성 높이고, 한 소리 또 하고, 내로남불에 동문서답 등등의 짓거리를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꼰대로 불린다. 그래서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새 은어도 생겼다.

‘젊꼰’ 개념으로 보면 한국은 꼰대들의 왕국이다. 범죄혐의자로 법원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야당대표도, 어설프게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파면당한 대통령도,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며 머리 터지게 싸운 국회의원들도, 강추위에 도심거리를 메운 시위자들도 꼰대 멸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젊꼰의 선두주자는 고모부를 총살한 김정은이다.

나도 별 수 없다. 옷매무새도, 행동거지도 꼰대다.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패티 페이지, ‘스타워즈’보다 서부활극이 좋다. 레스토랑보다 집 밥이 편하다. 어제 벤치에 엎드려 코를 박고 ‘고문’받고 있는데 누군가가 치료사에게 “덕분에 나았소. 점심 쏠 테니 시간 내시오”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왠지 그 영감은 꼰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들도 노인을 조롱한다. 흔히 ‘ancient one’(고대인), ‘old fogey’(구태 노인), ‘old codger’(괴팍한 노인), ‘crumbly’(바스러질 사람), ‘grumpy‘(심술첨지), ‘old coot’(노인 멍청이)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은어가 아니고 꼰대처럼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냥 악의 없이 유머러스하게 쓰인다. 듣는 노인들도 대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런 말에 화내는 순간 꼰대가 된다. 웃어넘기는 게 상수다. “웃음이 최고 양약이다. 약 먹는 대신 처방전을 들고 마냥 웃는다,” “청력테스트를 했다. 남을 무시하는 항목의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기억력이 뛰어나다. 못 본 것까지 기억한다,” “나는 늙어서 신이 됐다. 빵을(성경의 ‘번제’처럼) 태워서 먹기 일쑤다” 등 웃기는 노인 조크가 많다.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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