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한일 벚꽃 엔딩
2025-04-17 (목) 12:00:00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일본의 나라지역 요시노산은 무로마치 막부시대부터 손꼽히는 벚꽃구경(花見) 명소다. 4월 초면 3만 그루 이상의 벚나무에서 분홍과 우윳빛의 꽃물결이 넘실거리는 이곳은 인근 교토의 고다이지, 아라시야마 등 벚꽃 유명지역과 함께 전 세계 행락객들을 일본 관서지역으로 끌어모으는 관광의 요처이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벚꽃 만개 소식과 함께 요시노산 등 봄철 관광지 벚나무들에서 이상현상이 목격된다는 지적을 심심치 않게 내놓고 있다. 벚꽃 아래 줄기 곳곳에서 기생식물의 일종인 겨우살이들이 자라 생육을 방해하는가 하면, 지의류들이 달라붙어 나무가 병드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체로 2차대전 후 식목된 왕벚나무 수명이 다했고, 관리 인력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벚나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뜻한 겨울이 거듭되면서 개화시기가 예년과 어긋나 상춘객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일본 봄날의 상징인 벚나무의 쇠락기도 머지않아 보인다.
■한국의 벚꽃 시즌은 생경한 서울지역 4월 강설 탓에 ‘피자마자 엔딩’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지난 주말 서울지역에서 만개한 벚꽃에는 4월 적설량으론 역대 두 번째로 많은 0.6cm 눈이 쌓였다. 강설과 함께 불어닥친 강풍과 영하로 떨어진 체감기온으로 벚꽃은 맥없이 떨어졌다. 벚꽃 엔딩을 재촉한 4월 함박눈의 책임은 일단 기후변화에 물어야 할 것 같다. 북극기온이 점차 올라 북극 찬 공기를 품은 절리저기압이 한반도 상공 쪽에 자주 발달하면서 겨울 같은 봄이 떠나지 않고 있다.
■당대(唐代)의 시성 두보가 남긴 시 ‘청명’은 푸른 봄비의 이미지로 첫구(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를 연다. 4월 초 봄이 익어가는 계절에 어울리는, 활짝 핀 살구꽃에 대한 심상(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도 현대 독자의 춘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에도 4월은 대지를 적시는 봄비와 이를 양분으로 만개하는 꽃의 시절이었음이다. 다만 근미래 어느 봄날이라도 청명의 상징이 같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느닷없는 벚꽃 엔딩이 그저 아쉬움으로 끝날 일인가 싶다.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