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씁쓸한 한류

2025-04-17 (목) 12:00:00 성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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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몇 명이 만났다. 코로나 이 후로 보지 못했으니 거의 5년 만이었다. “너 얼굴이 그게 뭐니. 한국에 나온 김에 점도 빼고 쌍까풀도하고. 얼굴 손 좀 보고 가라.” 반갑다며 폴짝 거리던 한 친구가 불쑥 내뱉는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주억주억 끄덕인다. 세월이 만지고 간 흔적에 순응하며 살아온 내 얼굴이 한심하다는 눈길이다. 주거니 받거니 몇 번의 실랑이 끝에 D-day가 잡혔다. 쌍까풀을 비롯한 다른 수술은 절대로 안한다고 버틴 덕분에 피부과 시술만 받기로 했다. 지저분한 기미와 점을 빼기로 한 것이었다. 병원도 정해졌다. 친구 남편인 소아과 닥터가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했다. 피부과가 아니고 웬 소아과냐 했더니 잔말 말고 따라만 오란다.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친구를 따라간 곳은 강남의 큰 빌딩이었다. 층층이 병원 간판이 보이는데. 소아과는 3층이고 4층은 00성형외과였다. 친구는 나를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입구부터 간판이 휘황찬란하다. 눈, 코, 입, 안면윤곽, 리프팅, 피부시술 등등. 옛날에는 성형외과 한 곳에서 하던 미용시술이 세분화되어 각각 부위별로 전문의가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성형외과 종합 빌딩이 된 셈이다. 알고 보니 소아과 닥터가 건물을 사서 아예 성형외과 전문의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홀 한 쪽에 길게 접수처가 있고 여러 개의 작은 방에서는 각 부위별 상담실장이 고객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접수대에서는 상담 결과를 인수 받아 예약을 해주고 수술비를 정산했다. 모든 업무가 철저히 시스템화 되어 여러 전문병원이 한 병원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잘 생긴 청년이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듯 carry-on 가방을 끈 중국 아가씨 세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중국말로 안내를 하는 모습이 단체 관광단을 몰고 다니는 가이드 같았다. 곧 이어 또 다른 그룹의 베트남 여자들이 들어왔다. 역시 여자 가이드의 유창한 베트남 말이 사무실 천정을 날아다녔다. 코 기브스를 하고 나오는 남자, 퉁퉁 부은 눈에 테이프를 붙인 여자, 무슨 성형을 얼마나 했는지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나오는 여자.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 사람들을 보며 여긴 고쳐도, 덧대어도, 감아도, 그냥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뜯어내고 다시 만들어가는 얼굴들 속에 묘한 당당함까지 느껴졌다. 드라마와 K팝으로 대표되던 한류의 영역이 이제는 성형 분야로 확장된 것일까. 외국인이 줄지어 상담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는 모습에 ‘성형 전문 국가’가 되었나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듯 얼굴의 특정 부위를 규격화된 방식으로 ‘시술’하는 풍경은 의사를 단순한 기술 노동자로 전락시킨 것 같다는 실망감도 들었다.


미용 시술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인 ‘건강과 생명 존중’을 넘어 ‘미적 기준 충족’이라는 다소 좁은 영역에 매몰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때 문화 콘텐츠로 세계를 매료시켰던 한류의 다음 장이 ‘성형’이라는 자화상으로 그려지면 어쩌나 씁쓸했다.

흉을 보면서도 나는 기어이 피부과 시술을 받고 왔다. 덕분에 햇볕을 피하느라 복면을 하고 다니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성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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