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자녀들에게 한국의 뿌리를 심어주려는 부모의 노력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 문화 체험, 한자 학습까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한국 마니아’로 성장시켰다. 원어민 수준의 한국어 실력은 물론,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들과 딸 모두 한국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선천적 복수국적법’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고, 미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외동포 자녀가 한국에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데 태어나면서부터 한국국적을 갖게 되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문기사나 온라인상의 정보들을 통해 이 법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꽤 오래 걸렸으며 영사관 담당자 조차도 명쾌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만 18세 이전이라면, 이를 위해서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나와 남편이 국적상실 신고를 하고 나서 아들과 딸이 한국 국적을 이탈해야 하는 복잡하고 긴 여정을 거친 후에 미국 여권으로 한국 비자를 신청해야만 한다. 또 이 과정은 못되어도 1년 이상 걸리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미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에서 정하는 국적이탈신고 연령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된 뒤였으므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법으로 인해 한국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조차 없었고 그들의 열정과 부풀었던 꿈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다른 한편, 우리 아이들 친구 가운데 한국계가 아닌 다른 인종의 학생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혜택을 누리는 현실을 목격하자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 학교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에서 선천적 복수국적법으로 인해 한국계 학생들만 배제되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불이익을 넘어,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처사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단순한 법 조항이 아니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체성과 미래에 깊숙이 관여하는 문제다. 지금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나 지역의 시의원들의 활동은 물론 연방 상하원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연방정부 관련 직업을 선택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가서 선천적 복수국적자이니 자격이 박탈된다고 하면 또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한국 국민의 원정출산자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한국과 직접 관계가 없는 미국 땅에서 인생을 펼쳐나가는 동포 자녀들의 삶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이자 쓰레기로 전락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 지원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이 끝없는 폐해를 외면할 수 없다. 이제는 지혜로운 입법자들이 나서서 이 불합리한 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
한국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한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은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다.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은 단순한 법 개정을 넘어,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들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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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장 페닌슐라 한인학부모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