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돌아온 프랑켄슈타인 박사
2025-04-10 (목) 12:00:00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혁신적인 과학기술이 현실의 문턱을 넘어서려면 윤리와 법제의 엄정한 잣대를 통과해야 한다. 조력사망 기술은 당장이라도 국내에서 실현할 수 있지만, 생명을 경시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단단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차량은 기술력의 정점에서 보험업계와 법률가들의 치열한 논쟁을 마주해야 했다.
■ 이러한 절차 혹은 허들이 가장 복잡한 과학분야로는 생명공학이 꼽힌다. 2018년 유전자가위 기술로 에이즈 면역 유전자를 갖게 된 여야 세 쌍둥이를 선보였던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 전 남방과기대 교수. 그는 당시 ‘신의 역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 유전자 배열을 조작해 전 세계 과학계를 뒤집어 놨던 문제적 인물이다. 생명공학이 감당해야 하는 윤리의 잣대와 가장 강하게 부딪혔던 과학자인 셈이다.
■ 불치병 정복의 실마리를 찾아냈지만, 생명윤리의 강건한 규범을 위반해 ‘중국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까지 불렸던 그가 출소 후 오랜만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에이즈에 이어 알츠하이머 면역 유전자 편집 연구를 준비한다던 그가 세계 시장을 무대로 연구소 구하기에 나서면서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허젠쿠이가 마침내 과학계의 반발로부터 자유로운 해방구를 찾아냈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가 선택한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은 허젠쿠이의 제안에 앞서 그의 논쟁적인 연구를 허가하는 쪽으로 생명윤리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 덕분에 허젠쿠이는 제자들을 미국으로 보내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자신은 이후 남아공으로 진출해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매듭짓겠다는 계획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과학계는 2018년에 이어 다시 열리는 판도라 상자 앞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불치병 정복을 명목으로 인체 유전자를 인간이 뜻대로 조작한 결과, 근미래 어느 날 우리는 누구도 닮지 않은 뜻밖의 후손을 마주할지 모른다. 어쩌면 제국주의의 병폐였던 우생학 열풍을 불러내는 씨앗일 수도 있다. AI가 그렇듯, 과학의 진보는 늘 인간에게 문제해결 능력과 함께 골칫거리도 선사한다.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