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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댄스영화제의 이전

2025-04-03 (목) 12:00:00 라제기 / 한국일보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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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보통 개최지 이름을 따른다. 프랑스 칸에서 열려서 칸국제영화제이고, 부산에서 개최되니 부산국제영화제다. 지역 명을 붙이는 이유는 여럿이다. 해당 지역의 지명도를 등에 업고 싶어하거나 지역 자치단체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북미 최대 독립 영화 축제인 선댄스영화제는 어디에서 열릴까. 넓은 지역으로 따지면 미국 유타주다. 그렇다면 유타주 선댄스시 또는 선댄스읍에서 열리는 걸까.

■ 선댄스는 배역 이름이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1969)에 나오는 인물이다.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연기했다. 선댄스영화제 창립자이자 이사장이다. 1978년 시작된 선댄스영화제는 개최지가 솔트레이크시티였다가 1981년부터 인근 파크시티에서 열리고 있다. 처음에는 유타주에 영상산업 유치를 위해 시작했다가 북미 독립 영화 중심이 됐다. 스키로 유명했던 파크시티는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서 주요 영화 도시로 떠올랐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기간 파크시티를 찾은 이는 7만 명을 넘는다. 파크시티 인구(8,300여 명)의 10배 가까운 수치다.

■ 선댄스영화제는 2027년부터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개최된다. 새 개최지를 찾던 영화제 사무국 노력의 결과다. 오래전부터 파크시티와 선댄스영화제는 불화했다. 파크시티는 스키 계절이 한창인 1월에 너무 많은 사람을 모으는 영화제가 부담스러웠다. 영화제는 제대로 된 대형 극장 하나 없는 파크시티 혹한에 질린 상황이었다. 67개 도시가 경쟁을 벌였고, 승자는 볼더였다. 1,300명 규모의 극장이 있는 데다 인근 덴버에는 미국 46개 주와 연결되는 국제공항이 있다.

■ 영화제가 개최지를 옮기는 건 극히 드물다. 선댄스영화제처럼 명성 높은 축제의 이전은 특히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적어도 미국에서 영화제는 상품이다. 브랜드 가치가 오르고 필요성을 느끼면 원하는 곳으로 ‘연고지’를 이전할 수 있다.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 LA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옮겨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온 것처럼 말이다. 눈과 혹한이 상징이었던 선댄스영화제는 곧 로키산맥 이미지로 바뀔 듯하다.

<라제기 / 한국일보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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