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드는 도시 경쟁력
2026-02-12 (목) 12:00:00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
도시의 문화 경쟁력은 더 이상 거대한 유산이나 유명 인물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문화관광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갖고 있는가’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이야기하는가’이다.
싱가포르 페라나칸박물관 계단에 놓인 작은 고양이 조각상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박물관 주변을 오가며 직원과 방문객의 사랑을 받았던 길고양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이 조각상은 대규모 예산이나 화려한 연출 없이도 방문객의 마음에 남는다. 이 소소한 이야기는 박물관 경험의 밀도를 높이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감성 콘텐츠로 기능한다.
페라나칸박물관은 싱가포르 다문화 사회의 뿌리를 보여주는 문화인류학 박물관이다. 이곳은 페라나칸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지만 고양이 조각상 같은 일상의 서사를 통해 ‘살아 있는 문화’도 구현했다. 고양이 조각상 설치를 위해 박물관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을지 눈앞에 그려진다. 단순한 전시 연출을 넘어 도시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어떻게 관람 경험과 관광 만족도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다. 작은 이야기가 도시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리브랜딩’한 경우다.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은 고양이를 아예 제도 안으로 편입시켰다. 1745년 옐리자베타 여제가 쥐들로부터 예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들이도록 명하면서 시작된 전통이다. 지금도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박물관 지하를 비롯해 구석구석을 오가며 ‘박물관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이는 박물관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방문 동기를 강화하는 스토리 자본으로 작동하며 도시와 박물관을 ‘보는 곳’이 아니라 ‘기억되는 곳’으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고양이 박물관 ‘카텐카비넷’은 개인적 애정이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전환된 사례다. 한 수집가가 사랑하던 고양이를 기리며 문을 연 이곳은 주택 1층을 개조한 공간으로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 속 고양이가 모여 있다. ‘고양이’라는 친숙한 매개는 예술사를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동시에 소규모 개인 박물관을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로 만들었다. 거창한 투자보다 명확한 콘셉트가 수요를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벨기에 앤트워프 역시 이야기의 힘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확장했다. 이곳은 한국과 일본·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의 배경 도시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보기 위해 대성당을 찾는 이야기는 아시아 관광객을 앤트워프로 이끌었다. 이야기가 장소·예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관광 동선과 소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문화와 관광 그리고 도시 마케팅의 핵심이 반드시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 경쟁력은 더 큰 예산이 아니라 더 섬세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너무 익숙해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고 서사로 엮는 순간 그것은 경쟁력이 된다.
고양이를 기억하는 박물관은 도시 브랜드가 어떻게 인간적인 이야기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곁에 있지만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던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억에 남는 이야기로 엮는 순간 도시의 얼굴은 달라진다. ‘케데헌’의 인기 캐릭터 ‘더피’가 우리 전통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나왔다는 사실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고 보니 더피도 고양이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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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