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LA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를 인터뷰하면서 반복됐던 키워드는 ‘세대교체’였다. 신규 회원 숫자를 파격적으로 늘려서 조직 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게 한해 목표였다. 인터뷰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이민 2~3세대는 영어가 모국어인 데다 특정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한다”며 신규 회원 영입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토로하는 경제 단체장이 대다수였다.
최근 기자는 수많은 경제단체의 송년회와 신년 행사, 세미나 등을 취재하고 있다. 행사의 외견은 실로 화려하다. 수백명의 회원들이 마치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고 서로 와인잔을 부딪치며 친목을 나누는 장면을 수차례 목도했다. 하지만 젊은 회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흰머리가 성성하거나 검은 머리로 염색한 1~1.5세대 회원들이 대다수였다.
한인 경제단체의 대부분은 1970~80년대, 이민 1세대들이 자수성가해 만든 조직들이다. 이민 1세대들은 음식점과 식료품, 부동산, 보험, 교육, 세탁업, 건강관리업에 종사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업에 종사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식들만은 본인들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부모의 헌신덕에 이민 2,3 세대는 미국식 교육을 받고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진출했다. 이들에겐 수억원대 연봉의 실리콘밸리 개발자가 최고의 직장으로 여겨진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젊은 세대들에게 한인 경제단체가 매력적이지 않은 조직으로 변모한 상황에서 업종의 트렌드조차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한인 경제단체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의 1세대가 물러나고 나면 그 자리를 잇는 이가 없는 단체는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단체는 단순히 친목 모임이 아니다. 한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내고, 경제적 역량을 집결해 정치적 영향력까지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조직이다. 하지만 그 기능을 상실한다면 한인 사회 전체의 힘이 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인 경제단체 스스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그들이 중심이 돼 단체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먼저 언어와 인종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이민 2세, 3세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만큼 경제 단체에서 한국어 사용에 집착하기 보다는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한인 경제 단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미 주류사회와의 교류와 이종교배, 확장이 필요하다.
업종의 경계도 없애야 한다. 단순히 전통적 사업 위주의 단체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 종사자들을 단체로 영입해야 한다. 최근 K컬쳐와 K푸드가 미주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이들 분야에 대한 인재를 영입하면 화제를 일으킬 수 있다. BTS를 배출한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 지난달 한국경제인협회 정기총회에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자가 바라본 한인 단체들은 동일한 목적의 한인 단체가 너무 난립하고 단체 간은 물론 단체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인 단체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는 화학적 결합을 통해 전체 파이를 키우는 수밖에는 없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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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