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창가
2025-03-24 (월) 12:00:00
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겨울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창 밖으로 봄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조용하고 부드러워졌다. 봄이 여물어가고 있는 곳에 죽은 듯 겨울을 참아낸 까만 가지들이 숨을 쉰다. 가지 끝에 몽글몽글한 눈이 수없이 매달렸다. 성미 급한 것은 연두의 눈으로 살짝 밖을 살핀다. 3월의 생명력이 가지를 콕콕 찔러 입을 열라고 부추긴다.
골목 길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넘쳤다. 땅 따먹기, 자치기, 공기 놀이가 따뜻한 시절이었다. 3월26일은 ‘이승만 대통령 탄신일’로 정해진 공휴일이었다. 내 생일날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생일을 공휴일로 보냈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나는 잘 알지 못했고 다만 노는 것이 좋았다. 1960년에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라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아이들은 교복을 깨끗하게 차려 입고 왔다. 평소에 자주 먹지 않던 음식들을 한껏 먹고 이층 방에서 놀았다. 생일 초대가 좋았던 친구들은 두고두고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지 않으려나. 사진 찍는 일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사진이라도 찍어 두었다면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을 텐데. 케익도 없던 시절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행복함이 멋진 생일 선물이었다. 생일 지나고 얼마 후에 4.19혁명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하야 했다. 그 해 6.15일에 공휴일이 폐지 되었다. 여섯 번의 ‘생일 공휴일’ 의 끝이었다. 지금 몇 사람이나 그 일을 기억 할 수 있을 까.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고 나면 아련하게 창문 너머에서 나를 불러내는 소리가 들린다. 봄의 온기가 펌프의 마중물로 달려와 물을 펑펑 끌어 올리면 마음이 분주해졌다. 무엇인가 시작 하고 싶어 목이 말랐다. 늘 하려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3년마다 봄이 되면 이사를 했다. 집을 내놓아 팔고 다시 새로운 집을 구하려는 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사할 때 마다 늘어나는 집의 규모가 뿌듯했다. 봄볕과 함께 이사하는 일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다. 동회의 서류 정리와 아이들 전학시키는 일도 즐거웠다.
봄을 맞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이전에는 책을 선물받으면 아껴가며 읽고 또 읽었다. 책이 많이 꽂혀있는 친구의 집 책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제는 집집마다 책이 넘쳐난다. 봄 청소를 시작한 마루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다. 누구에게 주기도 어렵다. 아깝고 미안해서 버리지도 못하면서 읽지도 않는다. 정리하다 보면 오래 전의 시간과 마주치기도 한다. 추억을 소환하는 그 것 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숙제로 남아 있다.
이제는 조급하지 않다. 차분히 정리하면서 삼월의 창가를 내다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설렌다. 익숙한 길도 새롭게 다시 걸어 본다. 꽃이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흔들리는 가지와 손을 마주 한다. 이제는 무엇을 이루기 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봄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서서 햇살에 얼굴을 대보면 따사로움으로 간지럽다. 서둘러 가는 길이 아닌, 천천히 걸으며 찬란하게 시작하는 나무들을 만나리라. 3월이 조용하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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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