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아직은 내일이 있잖아’ (There’s Still Tomorrow) ★★★ ★ (5개 만점)
▶ 구박덩어리 가정주부의 일상속 전후 남성위주의 이탈리아에서 여성해방을 얘기한 멜로드라마
전후 이탈리아 영화계의 흐름이었던 네오-리얼리즘의 형태를 지닌 이탈리아 흑백영화로 네오-리얼리즘의 기수들이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구박덩어리 가정주부의 일상의 단면을 통해 남성위주의 이탈리아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과 여인의 자아각성을 통한 독립성 확보 그리고 여권 신장과 여성해방을 얘기한 사실적이면서도 약간 초현실적 분위기와 함께 다크 코미디의 터치를 지닌 재미있는 멜로드라마다.
1946년 로마. 아직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때. 영화는 가난한 집안의 가정주부 델리아(파올라 코르텔레시-이 영화의 각본도 공동으로 쓰고 또 감독으로 데뷔했다)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옆의 남편 이바노(발레리오 마스탄드레아)에게 “잘 잤어요”라고 말하자 이바노가 다짜고짜로 델리아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보듯이 델리아는 툭하면 이바노로부터 폭행을 당하는데 델리아는 그 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델리아는 이바노 외에도 10대 난 딸 마르첼라(로마나 마지오라 베르가노)와 어란 두 아들과 함께 병상에 누워있는 시아버지 오토리노(지오르지아 코란젤리)를 돌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 하면서 아울러 남의 집 청소와 빨래 및 그 밖의 잡일들을 하면서 푼돈을 벌어 이바노에게 바친다. 이바노는 이 돈을 술과 창녀에게 사용한다. 마르첼라는 아버지의 폭력에 무저항하는 어머니를 동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스러워 한다.
이런 델리아에게 동정을 표시하면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미군 흑인 헌병 윌리엄. 델리아에게 또 다른 기쁜 일은 마르첼라가 동네 부유한 카페주인의 아들 줄리오(프란체스코 첸토라메)와 약혼을 한 것. 그러나 이 기쁨도 나치에게 협조해 돈을 번 카페 주인의 가게에 폭탄이 터지면서 곧 사라진다.
델리아가 지닌 또 다른 기쁨은 동네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미캐닉으로 일하는 옛사랑 니노(비니치오 마르키오니). 니노는 델리아에게 가족을 버리고 둘이 함께 사랑의 줄행랑을 놓자고 졸라댄다. 이와 함께 델리아에게 비밀에 싸인 편지가 배달되면서 델리아의 수동적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
델리아가 남편 몰래 숨겨둔 현찰을 챙기고 행동에 생기가 돌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델리아는 집을 버리고 니노와 줄행랑을 놓을 것인지 그리고 구박덩어리의 신세를 벗어 던질 것인지 궁금하게 만드는데 델리아에 대한 이런 궁금증과 희망과 동정의 기대는 전연 뜻밖의 길로 접어든다. 마지막 결론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장면에서는 서스펜스 기운마저 감돈다. 델리아 만세다!
파올라 코르텔레시를 비롯해 발레리오 마스탄드레아 등 출연진의 연기가 좋은데 특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로마, 무방비 도시’(Rome, Open City)에 나온 안나 마냐니를 연상케 하는 코르텔레시의 연기가 출중하다. 촬영과 음악도 좋다.
<
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