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도 독립했고… 이젠 내 인생 살고 싶다”
▶ “아내 막말·폭력에 고민” 등 60대 남자들의 ‘헤어질 결심’

김민지 변호사가 페어팩스 소재 오피스에서 한 한인 남성 의뢰인과 법률상담하고 있다.
워싱턴지역 한인사회에서 황혼이혼(20년 이상 결혼 생활 후 이혼)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와 메릴랜드 콜럼비아에 법률 사무소를 두고 있는 김민지 변호사(가정법 전문)는 “성격 차이, 외도, 가정폭력을 수십 년 참다가 자녀가 독립한 후 ‘이젠 내 삶을 살고 싶다’며 이혼을 결심하는 60대 안팎 한인들, 특히 남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개인의 자유 및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며 대부분 남성의 문제였던 외도가 여성들에게도 많아진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과거 부인이 남편에게 이혼 요구가 많았던 반면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비율이 크게 늘었다.
김 변호사는 “더 이상 아내와 살고 싶지 않다는 60대 이상 남성이 갈수록 늘어난다”며 “성격 차이, ‘한 지붕 두 가족’같은 집안내 별거, 아내의 폭력이 주요 이유다. 맞고 사는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아내의 막말과 폭력을 고민하는 남성도 많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A모씨는 “이민 와 가족 먹여 살리느라 죽어라 일만 하다 은퇴했는데 와이프가 ‘삼식이’라 부르며 투명인간 취급한다”며 “100세 시대 살날이 아직 많은데 이리 살고 싶지 않아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60대의 B모씨는 결혼생활 30년 넘게 큰 문제는 없었지만 부인의 건강이 부쩍 안좋아지며 이혼을 요구한 경우다. 남편은 “그동안 남보기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부인과 심리적으로 멀어진지 오래라 아이들이 대학졸업할 때까지 참고 살았다”라며 “남들은 욕할지 몰라도 아내 병수발로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이젠 한국에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페어팩스에 소재한 스페이스(S_PACE) 상담소의 그레이스 송 소장은 “60-70대 남성의 경우, 퇴직과 신체적 쇠퇴 등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 가정에서 심화된다. 그동안 자신이 가정경제를 이끌어 온 시간들에 대한 인정보다 은퇴 후 무시, 멸시하는 언행 혹은 시선을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가정상담소와 한인복지센터 같은 상담 기관에도 이혼 등 가정 문제 상담이 증가 추세다. 이혼 사유는 경제적 어려움, 성격 차이, 외도, 가정 폭력, 자녀 문제 등으로 압축된다.
복지센터의 조지영 사무총장은 “과거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완화됐고, 100세 시대에 접어들며 이혼에 관대해졌다. 이젠 ‘백년해로’는 옛말이 됐다”면서 “한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가족 중심적 가치관과 이민 생활의 압박이 이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확인됐다.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상담소를 찾은 5065명(여성 4054명·남성 1011명) 중 60대 이상 여성의 비율은 22%로 2004년 6.2%에 비해 3배가 늘었고, 같은 기간 60대 이상 남성의 상담 비율은 8.4%에서 43.6%로 5배 이상 폭증했다. 황혼 이혼을 원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반증이다.
<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