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항공여행 불안증

2025-03-03 (월) 12:00:00
크게 작게
삶은 걱정의 연속이어서 걱정 없는 날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실체가 있는 걱정이 있고, 근거가 없는 걱정, 기우가 있다. 옛날 중국의 기(杞) 나라에 살던 한 사람(人)은 걱정근심(憂)이 지나쳤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땅이 꺼지면 어쩌나 … 걱정 때문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거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기인지우(杞人之憂), 이를 줄인 말이 기우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대한 걱정, 도가 지나친 근심을 뜻한다.

누군가 “비행기 사고 걱정돼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고 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기우’라며 웃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항공사고가 잇따르면서 비행기 타기가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올봄에 유럽여행을 앞둔 한 여성도 요즘 은근히 불안하다. 벼르고 별러서 하는 여행인 만큼 잔뜩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어느 순간 걱정이 찾아들었다. “비행기 타도되는 건가?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같은 걱정이다. 60대 후반인 그는 살면서 수십번 비행기를 탔고, 타면서 불안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자고 새면 비행기 사고소식이 전해지니 불안이 밀려들었다.


가장 충격이 컸던 것은 지난 연말 한국 무안에서의 참사. 12월 29일 방콕을 떠나 무안공항에 도착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도중 폭발하면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그때 놀란 가슴이 좀 진정되나 싶을 때 이번에는 미국에서 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1월 29일 워싱턴 DC 로널드 레이건 공항 부근에서 여객기와 군용헬기가 충돌 추락하면서 67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틀 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의료수송기가 추락해 7명이 사망했다. 일주일 후인 2월 7일에는 알래스카에서 소형비행기가 실종되더니 결국 잔해로 발견되고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 열흘 후에는 미니애폴리스 발 델타항공기가 악천후를 뚫고 토론토 공항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화염에 휩싸였다. 다행히 승객 대피와 화재 진화가 신속히 이뤄져서 탑승자 80명 전원이 생존했다. 하지만 기체에서 거대한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지켜본 승객들은 한동안 항공여행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그 외에도 애리조나의 공항에서 경비행기 두 대가 공중 충돌, 2명이 사망하는 등 이런 저런 사건들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사고 걱정에 비행기 타기가 꺼려진다면 그건 근거 있는 걱정일까, 기우일까. 전문가들은 후자라고 단언한다. 매일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미국에서만 수만 대이고 수만대가 아무 사고 없이 비행한다는 것이다.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일 대략 4만 5,000대의 상업용 항공기와 개인비행기가 290만명을 태우고 날아다닌다. 이들이 항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1,370만분의 1. 평생(80년) 살면서 벼락 맞을 확률(2만분의 1)보다 엄청 낮다.

한편 비행기가 불안해서 가능한 한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95분의 1.

항공여행 관련,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불안해서 절대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들, 불안하지만 참고 타는 사람들, 편안하게 즐기는 사람들. 첫째 부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항공사고들로 불안증이 심해진 사람들은 대개 둘째 부류이다. 이들이 주목해야할 것은 확률.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벼락 맞기보다 어렵고 로토 당첨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실 위험성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 모두를 염려하고 걱정하다가는 살 수가 없다. 일단 가능성 낮은 걱정, 기우부터 접는 게 상책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