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기밀취급 부주의 전적…정보기관 수장도 친러 행보 전력
▶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 상당한 데다 보복 우려도…우방들 고민 깊어

손 맞잡은 트럼프와 푸틴(2018년) [로이터]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동맹국에도 위협을 불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이 서방의 정보공유 체계에까지 여파를 몰고 오고 있다.
기밀 취급에 부주의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전적에 최근의 노골적인 친(親)러시아 행보까지 더해지면서 서방 동맹국들이 미국과 정보 공유를 어디까지 해야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가 상당한 데다 미국이 보복할 가능성도 있어 우방들의 고민은 한층 깊어지는 모양새다.
미국과 서방 동맹의 오래된 정보공유 체계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미국이 서방 5개국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서 캐나다를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지난 25일자 보도였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5개국이 참여하는 정보 동맹이다. 서로 물리적·기술적으로 닿지 못하는 범위의 기밀을 촘촘히 공유하며 수십년간 서방의 대표적 정보동맹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파이브 아이즈에서 캐나다를 축출하는 방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이 관세 압박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FT의 보도 내용이었다. 나바로 고문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서방의 정보동맹이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는 지속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 쓰는 미국 최우선의 국제질서에서 서방의 정보공유 체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서방 동맹국들은 미국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에 대해 고심해왔다.
1기 집권 때부터 기밀 누출로 여러 차례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적 탓이다.
그는 취임 초인 2017년 백악관에서 러시아 외무장관과 주미대사를 만나 동맹국에서 얻은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시도 첩보를 거론, 정보를 수집한 인사를 위험에 빠뜨렸다.
2019년 8월에도 이란의 미사일 발사대를 촬영한 위성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미국의 정찰 역량을 대통령이 나서서 노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기 정부 들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이 친러시아 행보를 노골화하면서 어디까지 정보를 공유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동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을 사실상 '패싱'하고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초반 종전협상의 가닥을 잡으면서 서방 동맹국들이 안보를 위해 공유한 첩보가 되레 러시아를 비롯한 적대관계의 국가 쪽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커진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 MI6에 몸담았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어떤 정부에도 그냥 장부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더 조심했고, 이번에 (MI6가) 덜 신중할 거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존 사이퍼 선임연구원은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협상) 회담 후 미국이 유럽 동맹의 우려보다 러시아와의 협력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미국과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동맹의 공포가 급속히 심화했다"고 지적했다.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털시 개버드 국장이 과거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 인사라는 점도 동맹국의 고민거리다.
'트럼프 충성파'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역시 과거 데빈 누네스 연방하원 정보위원장 참모 시절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하원 조사를 저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인사다.
그러나 자금력을 앞세운 미국의 첩보 수집 능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행보를 감안할 때 공유 범위 축소 시도는 동맹국에게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방이 미국에 건네는 기밀보다 공유받는 정보가 대개 더 많고, 수십년간 공동으로 첩보를 수집해 공유해오던 시스템을 잘못 건드렸다간 자국 안보에 중요한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분야들에서도 미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미 국무부에 몸담았던 켈리 맥팔런드는 폴리티코에 "무언가를 숨기려 했다가는 미국에 응징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