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영의 독서칼럼] 살아간다는 것

2025-02-20 (목) 12:00:00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크게 작게
[인생]이라고 한국에서 출판된 소설의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활착:活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이라는 제목보다는 살아간다는 것이 더 좋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인생’은 42개의 언어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출판되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말한다. -[인생]이라는 작품은 개인과 운명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둘이 서로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증오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그의 운명은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민요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농촌을 돌아다니며 밭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노닥거리기도 하고,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하루는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한 노인이 소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있었다. 소는 알아들은 듯 쟁기를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노인과 늙은 소, 저물어가는 두 생명이 오래된 밭을 간다. 노인은 옛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소의 발걸음이 느려지면 또다시 고함을 지르는데 매번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이유를 물으니,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여러 이름을 불러서 속이는 거라고 하면서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주인공 푸구이의 인생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운명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푸구이 집안은 대대로 살림을 불려 왔으나 아버지 때부터 가산을 조금씩 잃어간다. 아들 푸구이가 노름으로 남은 전 재산을 잃고 집도 뺏기게 되자 아버지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생을 마감한다. 푸구이는 먹고 사는 게 막막하여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하지만, 일이 서툴러 소작료도 채우지 못한다. 밭일을 돕다가 병이 난 어머니를 위해 의원을 모셔 오려고 성안에 간다. 지나가던 국민당 병사에 잡혀서 말 한마디 못 하고 군대에 끌려가게 된다. 그는 전쟁터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했으나 운 좋게도 살아서 돌아온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딸은 열병을 앓다가 청력을 잃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허덕이는데,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여 노름으로 잃었던 땅을 조금 배당받는다. 푸구이의 땅을 뺏었던 사람은 지주라고 지목당하여 사형을 당한다. 푸구이는 땅을 빼앗겼던 것이 오히려 목숨을 살렸으니, 다행이라고 한다.

그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들도, 딸도, 아내도, 사위도, 손자까지도 모두 죽음을 맞는다. 어처구니없게, 또는 허무하게 그들은 노인 푸구이의 곁을 떠난다.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 푸구이는 소를 사러 간다. 도살당하기 직전의 늙은 소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그 소를 사 와서 자기 이름 그대로 푸구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서로 닮은 그들은 친구인 듯, 가족인 듯 그렇게 살아간다.

이 가족 이야기에는 중국 현대사가 같이 있다. 지주 사회, 국민당 시절, 공산당 정권, 그리고 문화 혁명을 거치며 한 인간이 운명의 파도를 타고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또 잠시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푸구이,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잃은 것이 너무 많다. 그에게 왔던 사랑하는 가족들은 다 가 버렸다. 그는 늙은 소에게 그의 가족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산다.

없어진 것, 잃은 것을 생각하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인생은 공평하다고 느껴진다. 부잣집의 아들로 부를 누렸고, 노름을 포함하여서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해 보았고, 부인과 사랑도 하고, 아들딸을 낳는 기쁨을 누렸고, 손자까지 보았다. 장수하는 것이 복이라면, 그는 그런 복도 가졌다.

소설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하여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느낌을 접목했기 때문에, 위화는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소설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 위화는 말한다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 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 온 것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가 이 작품에서 찾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든 특별히 불행하거나 행복하기만 한 삶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운명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인생]이란 책에서 찾은 답인 것 같다.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